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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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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4대 왕 헌종(憲宗·재위 1834∼1849년)은 시(詩), 서(書), 화(畵) 등 예술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하늘이 재능을 시기했을까. 1849년 헌종은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후사도 없이 서거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열정을 인장(印章)에 남겼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은 ‘조선왕실의 인장’ 특별전(15일∼10월 8일)을 개최한다.
주된 전시품은 헌종의 개인 인장과 수집 인장이다. 헌종의 자, 호가 새겨진 인장, 그가 서화 감상을 했던 창덕궁 내 낙선재(樂善齋)와 보소당(寶蘇堂) 등 궁궐 전각 이름이 새겨진 인장이 전시된다.
헌종은 ‘원헌집’(元軒集·헌종의 호가 원헌)이란 문집 외에도 조선 인장예술을 대표하는 인보(도록의 일종)인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펴냈다. 이 책은 왕과 문인들의 교감, 조선과 청나라의 학문적 교류를 다뤘다.
이 밖에 전시회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 문팽, 옹방강, 오숭량의 인장과 조선의 대표 문인인 정약용, 김정희의 인장 등이 전시된다.
당시 사용자의 이름과 직위를 새겨 신분과 신용을 나타냈던 인장은 돌, 금속, 나무, 흙 등 각각의 재질이 갖는 색채와 조형적 장점을 살리면서 좁은 인면(印面)에 서체로 글귀를 균형 있게 배치했다. 글씨, 그림, 조각이 집약된 고도의 종합예술이었다.
조선왕실 인장에는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엄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인장이 있었다. 전서(篆書)로 글씨를 새겼다 하여 전각(篆刻)이라고도 불렸다.
전시기간에 ‘한국 인장, 전각의 역사’(김양동 계명대 교수·23일), ‘헌종의 문예취미와 서화 컬렉션’(유홍준 문화재청장·9월 6일), ‘헌종과 낙선재’(최종덕 창덕궁관리소장·9월 20일) 등 특별강연회도 열린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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