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백형찬]평창의 효석, 멤피스의 엘비스

  • 입력 2006년 7월 31일 03시 05분


코멘트
지난달 장마가 오기 얼마 전 강원 평창군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동식물 성장에 가장 적합한 높이라 해서 ‘해피 700m’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진행된 연수여서인지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연수를 끝내고 봉평으로 향했다. 날이 더워 시원한 메밀국수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봉평에는 이효석의 생가가 있고,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이라 꼭 찾아보고 싶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까까머리 시절 국어시간에 이 작품을 처음 읽고는 ‘숨 막히는’ 감동을 받았다. 특히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다’라는 대목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아련한 추억으로 젖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어쨌든 밤은 아니었지만 낮에 이곳을 찾았다.

봉평 가는 길은 온통 메밀 집으로 가득했다. 밭에는 메밀꽃이 하얗게 피기 시작하였다. 길가 황토 초가집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들었다. 주인 말이 봉평 메밀은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사실 메밀은 예전에 먹을 것이 없던 산간 마을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심었던 곡식이다. 그런 메밀이 이젠 황금 알을 낳는 작물이 됐다. 하긴 메밀국수가 대그룹 총수들도 즐겨 먹는 참살이(웰빙) 식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평창은 ‘효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까지도 전부 효석과 연결되어 있었다. 효석 생가, 효석 문학관, 효석 문학제, 메밀꽃 축제 등등. 이쯤 되면 ‘효석이 평창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예술가 한 사람이 뿌려 놓은 씨앗 하나가 이렇게 거목으로 자라 고향 사람들에게 부를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마찬가지다. 올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2000여억 원을 들여 도시를 꾸며 놓았으니 전 세계 관광객이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모차르트 이름을 단 상품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초콜릿, 과자, 사탕, 와인, 요구르트, 우유 등 먹을거리부터 모자, 티셔츠, 필기구, 음반, 공연, 관광 등 각종 상품까지. 모차르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을 화폐가치로 따지면 수천억 원은 된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까지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도 마찬가지다.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뿌리고 가는 돈 역시 천문학적이다. 예전에 미국 남부로 출장을 가다가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멤피스 공항에 들른 적이 있다. 공항 내 모든 상가가 ‘엘비스 프레슬리’ 일색이어서 의아해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멤피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고는 궁금증이 풀렸다. 거대 도시를 가수 한 사람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를 찾아가 보면 예술가로 도배되어 있다. 태어난 집, 살던 집, 다니던 학교, 작품 쓰던 곳, 공연하던 곳, 그림 그리던 곳, 시내 곳곳의 동상과 갖가지 기념품으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맞아 제각기 문화예술도시로 가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도 만해 마을, 소나기 마을, 상록수 역, 김유정 역 등 예술가와 작품의 이름을 딴 지명이 나오고 있다. 이젠 우리도 예술가를 국가적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봉평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비우면서 한 예술가의 위대함을 절절히 느꼈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 교육행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