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조동범 ‘생선’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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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생선 한 마리

서늘하게 누워 바다를 추억하고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갇힌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바다를 떠올리고 있다

생선의 눈동자에 잠시 푸른빛이 넘실댄다

생선은 내장을 쏟아낸 가벼운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바다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파도처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아련하게 출렁인다

캄캄하게 출렁이는 냉장고

눈동자 하나 가득 바다를 담고 싶은,

두 눈 부릅뜬 생의 마지막이

조용히 냉장되어 있다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문학동네) 중에서

‘생선은 생선이다’라며 애써 눈감아 왔는데 그만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무심코 생선구이를 뒤적이다가 또록또록한 눈동자를 보고야 말았다.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을 수밖에. 저 시인의 시 탓에 ‘반찬’이 ‘생물’이 되어 퍼득인다. 한낱 미물일지라도 왜 떠올리고픈 추억쯤 없겠는가. 푸른 해초 사이를 누빌 때의 싱그러움, 투명한 물속까지 비쳐 들던 햇살, 빠르게 몸 바꾸어 유영할 때 지느러미를 스치던 이성의 감촉. 생선의 눈동자에서 바다가 통째로 쏟아져 나온다. 바다뿐이겠는가. 파도를 스치던 바람과 별빛과 어부의 한숨까지 다 들어 있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다는 것, 얼마나 놀랍고 커다란 일인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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