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책을 읽는 것과 소유만 하는 것의 차이

  • 입력 200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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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날 저녁, 한 사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있었다. 친구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야 마르크스를 읽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이 점점 더 그를 거론하지 않는 이 마당에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거론하는 책들은 일단 유행이 지나간 후에 읽기를 좋아합니다.”

#2. 복권 당첨으로 일거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집을 새로 사고, 살림을 모두 명품으로 들여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뭔가 허전했다. 그는 궁리 끝에 책을 사기로 했다. 평생 책 한 권 사 본 경험이 없었던 그는 대형 서점에 들어가 서가의 한 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있는 책을 모두 집으로 배달해 주시오.”

그는 마침내, 집안 벽 한 면을 ‘장식’한 책장을 보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장면은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과 그의 친구였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가 실제로 나누었던 대화다. 또 두 번째 장면은 평소 책 읽기를 강조하던 나의 스승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위의 두 장면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나 혹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책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던져 준다.

‘(책) 수집가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서 빌린 책을 절대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던 베냐민은 자신의 말처럼 책 컬렉터로 유명했다. 그의 집에는 온통 책뿐이었다. 벼락부자가 되고 나서 한꺼번에 많은 책을 구입한 사람도 사전적 의미에서는 책 ‘수집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베냐민이 유행을 따르지 않고 지적 호기심과 욕구에 의해 천천히 곱씹어 가며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진정한 수집가였다면 후자는 지적 허영으로 책을 수집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겉모습을 장식하기에만 급급한 경우다. 베냐민 같은 사람들은 ‘빌려서 돌려주지 않은 책’이라도 언젠가는 다시 펴 보겠지만, 과시용으로 구입한 사람들은 책을 다시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책은 이제 더는 ‘장식적 가치’마저 지닐 수 없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즉흥적이고 말초적인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들에 심취되어, 고도의 사유를 요구하는 고정된 문자 텍스트로 이루어진 종이 책을 더는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수십 종의 책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 것과 단지 그것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새해에는 책꽂이에 꽂힌 책을 꺼내어 그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부터 털어내자. 그리고 단순한 수집가가 아닌 진정한 책벌레가 되기 위해 읽고 또 읽어보자.

베냐민은 그의 책 ‘나의 서재 공개-수집에 관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벌레라는 이름의 가명을 쓰고 미심쩍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큼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없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사람만큼 쾌적한 삶을 누리는 사람도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알 수 없는 정신이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 정신에 의해 책 수집가는 사물에 대해 갖는 가장 깊은 관계라는 의미에서의 소유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숙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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