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품으로]‘믿는 구석’은 가족뿐

  • 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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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아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 보셨죠? 오늘 아침 아빠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던데 요즘 부쩍 더 바쁜 우리 아빠, 이번 겨울에는 독감이 유행할 거라던데 꼭 조심하셔야 해요.

조금 전에 할머니 모시고 병원 다녀왔어요. 학교에 있는데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 곧 좋아지실 것 같대요.

그런데 아빠, 오늘은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요…. 솔직히 할머니 전화에 짜증이 앞섰거든요. 고3이라 받는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옮기지 말자고 항상 다짐해 왔지만, 실천하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아빠 딸, 자꾸만 조급해지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건 아니겠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마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한 해 내내 투정하던 저를 언제나 다정하게 깨워주시던 할머니 얼굴을 보니 죄송한 마음도 들고, 지난번에 아빠랑 전화한 것도 생각났어요. 그때 아빠는, 우리 딸이 할머니께 참 잘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잖아요.

대구 집을 떠나 서울에서 보낸 유학(?)생활이 벌써 3년째 됐네요. 저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서울에서 지내시는 할머니께서도 집 생각 많이 하세요. 그동안 정말 힘드셨을 텐데, 좋은 점수로 보답하지 못해 저도 많이 속상해요. 요즘은 논술 때문에 계속되는 시간을 때로는 멍하게 보내요. 이럴 때면 할머니께서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때로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는 저를 언제나 다정하고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니까요. 그리고 제게는 ‘믿는 구석’이 무궁무진한 거 아시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염주를 굴리며 기도하시는 엄마, 매일 모닝콜을 잊지 않으시는 아빠, 그때마다 들려오는 동생들의 파이팅 소리. 그럴 때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가족들의 메아리가 넘쳐나고 있음을 깨닫고, 던져 버리고 싶었던 볼펜을, 손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집어 들어요. 포기하지 말자.

‘나 해낼 수 있죠?’

언제나 변함없이 전해오는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 제 소중한 꿈과 목표도 점점 익어가고 있어요. 아빠도 언제나 파이팅!

너무너무 사랑해요. 딸 현정 올림

#박현정 양은 대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현재 대원외국어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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