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덕(德)의 뿌리를 찾아서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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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덕(德)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virtue’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대 윤리개념의 핵심인 이 단어의 의미는 삶과 행동이 도덕 원리에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virtue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뜻밖의 의미를 만나게 됩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에서 왔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 아레테(arete)에 해당하는 개념인데 ‘사물이 그 잠재된 본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것을 인간에 적용하면 인간다움을 가장 잘 구현하는 능력입니다. 아레테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통치자의 아레테는 지혜이고, 군인의 아레테는 용기이며, 평민의 아레테는 절제입니다. 이것들이 국가 안에서 전체적 조화를 이룬 아레테로서 정의를 합쳐 플라톤의 4주덕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아레테가 고대 로마로 건너가 비르투스가 되면서 특히 ‘남자다움’이라는 뜻이 강조됩니다. 라틴어로 비르(vir)는 ‘사나이’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마에서 덕은 전쟁터에서 용기이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무언가를 이뤄 내는 창조적 힘’을 의미했습니다.

철학자 니체(사진)는 이처럼 활력이 넘치던 덕의 의미가 기독교의 세례를 받으면서 점차 선악의 쇠사슬에 묶인 옹졸한 개념이 됐다고 한탄했습니다. 흔히 ‘권력의 의지’로 번역돼 온 니체의 ‘힘의 의지’는 바로 우리의 본성에 간직된 창조적 힘을 인위적 윤리로 억누르지 말고 맘껏 발현시키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개념의 변질은 동양적 덕의 개념에서도 발견됩니다. 윤리적 의미가 강조되는 유가(儒家)의 덕과 달리 도가(道家)의 덕은 우주 만물의 이치인 도(道)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의미했습니다. 새가 하늘 높이 날고, 쥐가 땅을 깊이 파는 것도 그 본성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 이가 장자(莊子)였습니다.

이는 유가 사상의 원천이자 핵심 덕목인 인(仁)에서도 발견됩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사람다움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고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인의 의미가 논어에 이르러 어질다는 의미를 띠기 전에는 ‘남자다움’(시경), ‘재주 많음’(서경), ‘세력의 규합’(좌전)과 같은 사람의 탁월한 능력을 뜻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양에도 니체와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중국 명말의 사상가 이탁오입니다. 그는 내면적 성찰 없이 공맹의 도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를 키가 작아 연극판을 제대로 못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장단을 맞추는 난쟁이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유학자였지만 도가의 덕의 개념을 받아들여 인위적 물이 들지 않은 어린이의 마음(童心)을 인간의 가장 참된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니체가 세속의 선악의 윤리에 묶인 이들을 난쟁이에 비유하고, 인간 정신의 최종단계로서 유희성과 창조성을 지닌 어린이를 상정했던 것과 놀랍도록 닮지 않았습니까.

근대적 삶이 기독교와 유교의 보편윤리에서 보다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삶은 다시 인권과 ‘정치적 올바름’이란 또 다른 인위적 윤리의 사슬에 자승자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학자로서 고대적 덕(능력)은 실현했지만 현대적 덕(윤리)의 함정에 빠진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를 보며 떠오른 단상입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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