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사실보다 주장이 먼저 문화재는 말이 없건만

  • 입력 2005년 12월 5일 03시 00분


새로 문을 연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기를 끄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삼국시대 7세기 전반·사진)이다.

최근 이 반가사유상의 영문 설명문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논란을 초래한 대목은 ‘This statue has remarkable similarities with a wooden statue at the Koryuji in Kyoto, Japan’(이 불상은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고류 사·廣隆寺 목조 반가사유상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란 문구다. 일부 관람객이 “한국의 불상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외국인들이 오해할 수 있다”면서 박물관 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관람객들은 “고류 사 반가사유상은 한국에서 만든 것인데 이렇게 설명을 해 놓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박물관 측은 “객관적인 사실을 소개했을 뿐”이라고 해명하다가 영문 설명을 수정했다. 박물관 측의 영문 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것과 별개로 이번 논란에서 주목되는 점은 ‘일본 고대 문화는 한국 문화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우리 국민의 ‘절대적 믿음’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 삼국시대 때 한국에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반도 제작설을 뒷받침할 근거는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선 한반도 제작설의 근거를 보자.

첫 번째 근거는 고류 사 반가사유상의 재료가 한반도에는 많지만 일본에는 별로 없는 적송(赤松)이라는 점. 두 번째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스이코(推古) 31년(623년)’ 부분에 나오는 ‘신라의 사신이 불상과 금탑 등을 갖고 왔으며 그 가운데 불상은 하테데라(秦寺·고류 사의 다른 이름)에 안치했다’는 내용. 여기서 말하는 불상이 바로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는, 가능성은 높지만 객관적인 물증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적송은 일본에도 있으며, ‘일본서기’에 나오는 불상이 지금의 고류 사 반가사유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본인이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모방해 고류 사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언제 어떻게 모방해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명확한 상태다. 일본 학계에서도 한반도 제작설, 일본 제작설이 맞서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넘어갔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심증일 뿐이다.

일본 나라(奈良) 현에 있는 호류(法隆) 사 백제관음상을 백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근거가 더 희박하다. 백제관음상의 얼굴을 보면, 한국에 남아있는 백제 불상의 얼굴과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중국의 불상과 더 가깝다. 이 관음상에 백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지 백제 불상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객관적 사실보다 희망 섞인 믿음을 앞세우려는 정서는 어찌보면 인지상정이다. 또한 넓은 의미의 민족주의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빼앗으려 하고 일본이 독도를 침탈해 가려 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사실도 중요하다.

문화재는 말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과도한 추정이나 주관적인 판단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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