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현장고발 TV프로 붐…‘폭력해결 하려다 폭력모방’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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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가정 폭력 등 시청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의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SBS ‘긴급 출동 SOS 24’ 등 솔루션(해결) 프로그램이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폭력 장면의 과도한 노출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SBS 화면 캡처
TV가 가정 폭력 등 시청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의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SBS ‘긴급 출동 SOS 24’ 등 솔루션(해결) 프로그램이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폭력 장면의 과도한 노출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SBS 화면 캡처
《어머니를 마구 때리는 패륜아, 화가 난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는 10세 어린이, 남동생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여동생을 성폭행한 ‘큰형’…. 1일 처음 방영된 SBS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화 오후 11시)는 회를 거듭할 때마다 충격적인 가정 폭력의 현장을 고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긴급출동…’는 방송사가 가정 폭력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솔루션(Solution·해결)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다. SBS ‘실제상황 토요일’(토 오후 6시)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MBC ‘가족애 발견’(목 오후 7시 20분) 등 최근 솔루션 프로그램은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영상이 폭력의 모방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솔루션 프로그램의 확산=‘긴급 출동…’가 15일 방영한 ‘무서운 큰형’ 편은 3회 방영분 중 가장 시청자 반향이 컸다.

이 편은 25세 남성이 고교생인 남동생을 쇠로 만든 아령 등으로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때리고 중학생인 여동생과는 아예 방을 함께 쓰면서 성폭행을 한 충격적 내용을 담았다. ‘큰형’이 어릴 적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아버지에게 수시로 폭행당해 이를 동생들에게 똑같이 행사했다는 사실을 밝혀 가정 폭력의 대물림이 얼마나 심각한가도 고발했다.

제작진이 경찰에 사실을 알려 ‘큰형’은 긴급 구속됐고, 동생 남매는 방송 후 제작진이 마련해 준 임시거처로 옮겨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방영 이후 18일까지 이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는 ‘큰형’의 폭력에 분노하는 2600여 건의 글이 올랐다.

▽폭력의 학습효과?=‘긴급출동…’의 시청률은 10.0%(1일)에서 12.2%(8일), 13.4%(15일·이상 TNS미디어코리아)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소재의 폭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누리꾼 김지혜 씨는 “청소년기에 이 같은 영상물을 접하면 ‘저래선 안 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폭력 자체에 익숙하게 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특히 교양 시사 프로그램인 경우 ‘긴급출동…’처럼 충격적인 장면이 나와도 방송 프로그램 연령 등급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린 정미진 씨는 “세 살짜리 딸이 자해 행동을 모방하는 바람에 속이 상한다”며 “프로그램 시간대를 옮겨 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긴급출동…’의 허윤무 PD는 “정신과의사 변호사 상담전문가 등이 프로그램을 모니터해 불필요하게 폭력적인 장면은 솎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의도하지 않은 선정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큰형’이 여동생을 성폭행한 사례는 그 자체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 피해자의 신원 노출도 문제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음성 변조를 하지만 집 내부 구조나 교복 등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주변에서 신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후 관리에 대한 우려=무엇보다 ‘솔루션’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일단 피해자와 가해자가 격리됐지만 뒷날 가해자가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는 것.

‘무서운 큰형’ 편을 본 누리꾼 황정호 씨는 “시간이 흘러 ‘큰형’이 출소했을 때 동생들이 어디 살고 있는지 알아내 보복할 경우 누가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긴급출동…’ 제작진은 “방송 후 지속적인 치료와 상담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변화된 모습을 추후 방영할 예정”이라며 “자체 경호팀 운영과 경찰의 협조를 통해 신변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기현 연구원은 “가족사라는 민감한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작 과정에서 잘 여과해야 한다”며 “사후 문제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추가 취재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선정적인 상업 프로그램의 대표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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