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 멋∼있다!…드라마 ‘어록-대사 따라하기’ 유행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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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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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연애와 마라톤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선수가 많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때론 외롭다. 평생 한 번도 못 해보고 죽을 수 있다. 용기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아∼ 젤 중요한 게 빠졌네. 상처 입을 수 있다….”

“내 마음이 이젠 말을 안 들어. 아무리 말려도 날 협박해도, 내가 날 줘 패도 내 맘이 너뿐이다. 오늘부터 당신, 내 소속이야.”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주말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인기 대사를 한 연인이 따라하는 모습. 원래 대사는 “오늘부터 윤재희(전도연)는 종로서 강력3반 최상현(김주혁) 소속입니다.”

○‘어록’이 인기도를 좌우

최근 방송가에서는 드라마 성공의 관건이 ‘어록 띄우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캐릭터나 스토리보다 멋진 대사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야 한다는 것. 시청자 정현진(27·서울 용산구 남영동) 씨는 “요즘 들어 TV드라마를 보다보면 시를 능가하는 압축미와 은유적인 미사여구를 동원한 대사를 자주 접한다”며 “시구를 옮겨 적듯 수첩에 기록해둔다”고 말했다.

주로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지던 유행어가 드라마에서 양산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히트작인 SBS ‘파리의 연인’으로 꼽힌다. “애기야 가자”, “내 안에 너 있다” 등이 유행한 후 올해 들어 드라마 대사들의 ‘스타일리시(stylish)’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올해 유행한 어록은 KBS ‘장밋빛 인생’의 “개뼉다구, 개밥그릇”(‘사랑이 대수냐’는 비유),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사랑 때문에 고통스럽다며), “사람들은 죽는 걸 알면서도 살잖아”(현진헌이 김삼순을 선택하는 이유로 설명), 최근 종영된 MBC ‘비밀남녀’의 “다시 태어나세요”(빈부차로 결혼 조건이 맞지 않는다며) 등이다. 유명 대사는 인터넷을 지나 오프라인에서까지 확대 재생산된다. 회사원 이태훈(31·서울 은평구 갈현동) 씨는 “드라마 대사 중 멋진 말은 외워뒀다가 써 먹는다”며 “알아듣고 웃는 사람일수록 유대감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말’이 아니라 ‘이미지’ … 전신감각(全身感覺)적 문자시대

이미지가 대세인 영상시대에 유독 구어(口語)인 어록이 뜨는 이유는 뭘까? 드라마 어록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맥락과 이미지’를 담고 있어 사실상 또 하나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지시적이지 않고(denotative) 함축적(connotative)이다. 연애감정 등을 ‘사랑’이란 추상적인 단어에 담는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찍어낸 풍경처럼 시각화하는 것.

‘프라하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는 “작가들이 대사 속에 전체적인 맥락을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한 장면에 풍경이 압축적으로 담기는 것 같은 영상 이미지가 스며든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본질이지 대사가 본질은 아니다”며 “맥락과 동떨어진 어록은 시청자들이 ‘말장난’이란 것을 알아본다”고 지적했다.

김용희(국문학) 평택대 교수는 “이전의 언어는 청각이나 종이 위 문자로 표현됐지만 요즘 언어는 영상이미지와 함께 총체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며 “드라마 어록은 문자가 전신감각적인 문자, 즉 ‘이미지 말’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신돈 “하하하”MBC 사극 ‘신돈’ 패러디 인기

어록이 뜨기 위해서는 드라마 속 대사와 영상 이미지, 스토리 맥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대사와 이미지의 ‘충돌’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히트 사례는 MBC 주말드라마 ‘신돈’. 이 드라마는 고려 말 요승으로 알려진 신돈을 재조명하는 사극으로, 신돈(손창민)과 공민왕(정보석)을 중심으로 고려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10% 안팎으로 높지 않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는 신돈 역의 손창민 사진이 넘쳐난다. 이른바 ‘하하창민’으로 불리는 이 사진은 극 중 신돈의 대사 “언제까지 그렇게 살 텐가”와 손창민이 호탕하게 “하하하하” 웃는 모습을 캡처해 합성한 것. 누리꾼들은 이를 각종 패러디에 이용하고 있다. ‘신돈’의 정하연 작가는 “원래 신돈의 웃음과 대사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힘이 없음을 느끼는 자조와 냉소의 표현이었다”며 “극중 대사가 원래 의도와 달리 코믹하게 부각돼 신기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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