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날’ 앞두고 전국시인축제 전주서 열려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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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마당에서 열린 전국시인축제에서 정진규 시인이 자신의 시 ‘플러그-알2’를 낭독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29일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마당에서 열린 전국시인축제에서 정진규 시인이 자신의 시 ‘플러그-알2’를 낭독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이번 여름 전주 덕진공원 연못가서 햇살들이 해의 살들이 이른 아침, 꼭 다문 연꽃 봉오리들마다에 플러그를 꽂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이내 어둠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정진규 시인이 전북 전주시의 덕진공원에 가서 연꽃들을 보고 쓴 시 ‘플러그-알2’의 일부다. 그가 눈부신 여름 햇살들을 보았던 전주는 이제 가을이 깊었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慶基殿) 너른 마당에는 노란 은행잎이 가득했다. 그가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던 길에 전주 이씨 가문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는 오목대(梧木臺) 아래 비탈에는 붉은 단풍이 짙었다.

경기전과 오목대가 자리한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한옥마을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는 전국시인축제 ‘시여, 노래하라’가 29일 오후 170여 명의 시인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 축제는 한국시인협회(회장 김종해)가 제19회 ‘시의 날’(11월 1일)에 앞서 마련한 시 낭송의 한마당이었다. 전주는 예향(藝鄕). 풍류의 도시, 제지(製紙)의 도시, 국악의 도시다. 이날 특별히 나온 국악인 박윤초 씨가 유치환의 ‘그리움’을 시창(詩唱)으로 부르고 나자 국악인 차복순 씨가 ‘춘향가’의 ‘오리정 이별 대목’을, 국악인 김경호 씨가 ‘적벽가’의 ‘불 지르는 대목’을 열창하고 시인들은 추임새를 넣었다. 시인 서정춘 씨는 자작시 ‘죽편 1’에 가락을 붙여 불러 시창 데뷔 무대를 만들었다. 시창의 절정은 국악인 안숙선 씨가 부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고, 가을 저녁에 깊은 울림을 던진 시의 절정은 오세영 시인의 ‘젖은 눈’이었다.

‘세숫물에 마른 갈잎 하나 파르르/떨어져 가을이다./한 움큼 물을 뜨다 만 채 물끄러미/들여다보는 水面(수면),/흔들리는 파문 사이로/하얗게 머리 센 사내 하나가/하늘 끝자락을 붙들고 망연히/나를 치어다보고 있다./어디서 보았을까. 깊고 짙은 속눈썹,/그 젖은 눈에 하얗게 소복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초등학교 운동장을 들어서던/어린 소년이 보이고/팔랑팔랑/나비처럼 뿌리치고 사라지던/꽃밭의 소녀가 보이고/바람벽을 등지고 쓸쓸히/소주잔을 기울이던 원고지 칸 사이의/사내가 보인다./한 움큼의 세숫물마저/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텅/비어버린 손바닥,/문득/이가 시리다.’(‘젖은 눈’ 전문)

전주=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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