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공개된 ‘민족魂’ 돌덩이에 짓눌린채 방치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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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서 한일 양국 정부를 대표해 주일 한국대사관 추규호 정무공사(오른쪽)와 일본 외무성 후쿠시마 게이시로 정무관(가운데), 신사 최고책임자 난부 도시아키 궁사가 북관대첩비 반환 합의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12일 오전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서 한일 양국 정부를 대표해 주일 한국대사관 추규호 정무공사(오른쪽)와 일본 외무성 후쿠시마 게이시로 정무관(가운데), 신사 최고책임자 난부 도시아키 궁사가 북관대첩비 반환 합의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북관대첩비의 한국 반환을 확인하는 합의문 서명식이 12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東京)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 신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주일 한국대사관 추규호(秋圭昊) 정무공사, 일본 외무성 후쿠시마 게이시로(福島啓史郞) 정무관, 신사 최고책임자인 난부 도시아키(南部利昭) 궁사(宮司)가 서명했다.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해 애써 온 한일불교복지협회의 양국 대표인 초산(樵山·76) 스님과 가키누마 센신(枾沼洗心·75) 스님도 감회 어린 표정으로 서명식을 지켜봤다. ▽보관 현장=신사 측은 서명식 후 비석이 세워진 본존 옆 숲 속으로 50여 명의 취재진을 안내했다. 2000년 숲 속으로 옮겨진 뒤 처음 공개된 북관대첩비는 일반인 출입금지의 철책 안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비신(碑身)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자연석에 짓눌린 상태였다. 비신 옆 일부에는 균열이 보였으나 다행히 비문은 전부 해독이 가능한 상태였다.

신사 관계자는 비신 위의 자연석에 대해 “예전부터 이런 상태였다”며 누가, 언제, 왜 이렇게 해놓았는지에 관해 답변을 피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민족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 돌덩이는 국내로 운송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사 측 변명=신사 측은 이날 배포한 자료에서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청일, 러-일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비석이 있는 것은 양국 간 감정을 해치게 된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당시 지방관리와 후손의 동의를 거쳐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입장 때문에 합의문에는 약탈행위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일정=15일 정부와 민간단체 대표 등 인수단은 북관대첩비 앞에서 중요한 일을 치를 때 올리는 의식인 고유제(告由祭)를 지낸 뒤 본격적인 이송 준비에 들어간다. 16∼19일에는 비석 상태를 정밀 점검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긴급 보수를 하게 된다. 26일 이전에 비행기 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이송을 마치고 28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에 맞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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