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고학자 허수경, 에세이집 ‘모래 도시를 찾아서’ 펴내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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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허수경(41) 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에는 라디오 작가로 일하면서 시를 열심히 써 왔다. 그러다 1992년 갑작스레 독일로 건너가 지금까지 뮌스터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가 독일 바깥으로 나가면 자주 머무는 곳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같은 나라들이다. 고대 중동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나라들의 황량한 벌판이나 모래 언덕 아래에 잠들어 있는 수천 년 전의 가옥들과 도시를 발굴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최근 펴낸 ‘모래 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는 이 같은 일들에서 겪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일의 경이로움,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은 문명과 역사의 종말을 쳐다보면서 겪는 허무함이 선명하다.

이 책에서 허 씨는 “죽은 자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무덤 건드리는 일을 저어하지만 무덤을 발굴하는 일은 고고학의 일상에 속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범인을 가려내는 일과 발굴하는 일은 어떤 면에선 방법적으로 동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고고학자가 1m²의 발굴지에서 깊이 1cm 단위로 변해가는 땅 빛깔을 관찰하는 일과 탐정이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의 깊이를 통해 범인의 몸무게를 가늠하는 정신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라크 등지의 고대 유적을 탐구하면서 옛 사람들의 마음을 더듬어 가는 허수경 씨. 이슬람 사원의 첨탑 중 가장 높은 이라크 사마라의 첨탑(위)과 기원전 1∼3세기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던 이라크 북부 하트라의 신전(아래). 동아일보 자료 사진

허 씨가 자주 찾는 중동의 나라들은 구약 성경의 무대. ‘믿음의 아버지’로 꼽히는 에이브러햄(아브라함),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금의 이라크 땅으로 끌고 가 노예로 삼았다는 네부카드네자르 왕, 하늘까지 닿으려다 무너져버린 바벨탑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고고학의 세계는 성경이 그린 과거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로 붙잡혀 살던 이집트를 탈출한 것은 기원전 약 1440년경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독일 고고학자들 가운데는 기원전 700년경에 그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최소한 기원전 1300년경까지 이집트의 군대들이 곳곳에서 힘을 떨쳤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 6만 명이 도피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란에 휩싸여 큰 타격을 입은 이라크의 소식은 허 씨에게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달 표면처럼 파헤쳐진 유적지들. 수천 개의 점토판이 사라지고 불도저가 유적지를 휩쓸고 다닌다. 물론 그 일은 미군에 의해 일어나지 않았다. 이라크인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도굴하는 이들에게 그 도굴품을 팔 수 있는 길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들은 전쟁과 테러 와중에 도굴을 하려고 했을까?”

그는 신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아수르 무발리트의 마지막 거처가 있었던 술탄테페를 찾은 적이 있다. “폐허의 어느 깊은 골에서는 검은 띠가 물경 2m 두께로 둘러져 있었는데 고고학자들이 부르는 ‘파괴 층위’의 자취였다. 그것인가. 모든 역사가 끝난 뒤 (생기는) 파괴층의 검은 띠가 상가(喪家)의 검은색 상장처럼 두르고 있는 것, 그것을 위해 왕들은 ‘세계 질서’를 위한 전쟁과 살육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1987년 등단한 허 씨는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년) 등의 시집을 냈으며 독일에서도 시 쓰기를 놓지 않고 있다. 1996년에는 장편소설 ‘모래도시’를 발표했고 국내 문예지에 꾸준히 시를 보내오고 있다. 허 씨는 2003년 4월 뮌스터대 교수와 결혼해 독일에 정착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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