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는 시커먼 물이 흘렀고 하천 양 옆으로는 판자촌이 가득했죠. 그런 청계천에 40여 년 만에 다시 물길이 뚫린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질 않네요.”
서울 중구 청계8가에서 고서점인 ‘경안서림’을 운영 중인 김시한(75) 씨. 그는 51년간 이곳에 머물며 청계천의 복개와 복원을 지켜본 주인공이다.
김 씨가 청계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54년.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6·25전쟁으로 군에 입대해 1953년 1등 중사로 제대한 직후였다.
“서울에 올라와 마땅히 할 일이 없어 교회 건축을 비롯해 막노동을 했어요.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대학천(현재 종로5가 부근·1960년대 복개)에 간판도 없는 허름한 중고서점을 내게 됐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고서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 당시 청계천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널빤지와 각목으로 대충 만든 판자촌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속에서 고서점은 성황을 이뤘다. 전쟁으로 책을 구하기 어려워진 시절, 중고서적을 사고팔러 온 사람들이 청계천에 몰렸다. 청계천은 ‘고서적촌’이 됐다.
김 씨는 대학천이 복개되면서 1972년 청계8가에 ‘경안서림’을 냈다. 이 서점은 5평 남짓한 공간에 1만여 권의 빛바랜 책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 서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청계천 재개발로 2, 3년 뒤 부근의 36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는 것.
청계천 일대의 수백 개에 달했던 서점은 70% 이상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책이 희망’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 서점에서 자료를 찾아 박사나 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고 인재를 키우는 존재죠. 청계천에 터를 잡고 오래된 책과 벗할 수 있으매 행복합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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