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노동의 힘’…노동운동은 세계화를 먹고 자란다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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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힘/비버리 J 실버 지음·백승욱 안정옥 윤상우 옮김/351쪽·1만5900원·그린비

세계화가 자본과 노동의 대결에서 노동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의 주된 동력의 하나였던 한국의 노동운동도 ‘부도덕이나 폭력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일반인에게는 성장정책의 걸림돌’(최장집 고려대 교수)로 인식되고 있다. 최고 18%를 기록했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1%까지 하락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이런 비관론에 정면 도전한다. 이런 인식은 시간적으로는 20세기 말∼21세기 초라는 시간대에, 공간적으로는 노동운동이 성공한 선진국에만 초점을 맞춘 제한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일반인의 직관적 추리는 이렇다. 자본과 시장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 시대, 한국의 노동운동처럼 전투적인 곳은 자본투자 기피 지역이 돼 저성장과 고용 불안에 빠진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이런 노동운동관이야말로 전 지구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한 시대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통상보다 훨씬 더 긴 역사적 틀과 더 넓은 지리적 틀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월러스타인의 세계체계 분석의 시각을 강조한다. 그는 1870∼1996년 영국의 더 타임스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실린 전 세계 노동 소요 사태 관련 기사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이에 접근했다. 그 결과 앞으로 노동운동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더욱 강성해질 수 있으며 특히 급속히 산업화하고 있는 중국이 그 메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시대 노동운동에 맞선 자본의 대응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임금이 싼 지역으로 생산지 이동(공간 재정립), 기술혁신과 조직개혁을 통한 노동 통제력 강화(기술 재정립), 아예 무역과 생산에서 이탈해 금융자본으로의 전환(금융 재정립)이다.

저자는 이들 노동통제 전략이 대략 120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지만 그 어떤 전략도 노동자들을 길들이는 최종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풍부한 통계와 정교한 논리로 반박한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미국-서유럽-남미-한국-중국으로 계속 이동하지만 하나같이 해당 지역 노동운동의 경쟁력 강화와 민주화로 이어졌다. 공간 재정립이 세계적 차원에서 오히려 노동운동의 강화와 확산을 낳고 있다는 것. 또 기술 재정립은 선도산업의 역할이 중요한데 19세기 섬유산업, 20세기 자동차산업이 그러했듯이 21세기 들어 서비스산업, 반도체산업, 교육산업, 운송산업이 노동 소요의 핵심 진원지가 되고 있다. 금융 재정립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자본주의 역사과정이 증명하듯 대량 해고, 실업 급증, 산업 공동화, 그리고 이런 상황에 위협을 느낀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항의, 전쟁을 낳았다.

총 9만1947건의 기사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 10년, 출판까지 또 10년이라는 세월의 공을 들인 이 책은 미국사회학회가 주는 올해(2005년)의 최우수 출판상을 수상했다. 원제 ‘Forces of Labor’(2003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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