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도윤-도권 형제, 그들이 손대면 무대가 ‘설설’ 끓는다

  • 입력 2005년 8월 3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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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작자 설도윤(오른쪽), 도권 형제. 원대연 기자
뮤지컬 제작자 설도윤(오른쪽), 도권 형제. 원대연 기자
“요즘 돈 버는 사람은 ‘설씨 형제’밖에 없다.”

공연계에 떠도는 농담 아닌 농담이다. ‘설씨 형제’는 바로 설도윤(46) 설앤컴퍼니 대표와 설도권(42) 클립서비스 대표다.

형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동생은 ‘아이 러브 유’의 프로듀서를 맡아 각각 두 작품을 올해 최대 흥행작으로 만들었다. 9월 1일 막을 내리는 ‘오페라의 유령’은 유료 객석 점유율이 95%로 잠정 집계됐고, ‘아이 러브 유’는 올 상반기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한 흥행작이다. 형은 대극장을, 동생은 중소극장 시장을 ‘평정’한 셈.

“형제가 나란히 붙어 다니면 모양이 우습다”며 되도록 서로를 피한다는 형제 프로듀서를 함께 만났다.

설도윤, 도권 형제가 처음으로 ‘공동 프로듀서’로 나선 뮤지컬 ‘프로듀서스’의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 국내에서는 라이선스로 무대에 올린다. 사진 제공 클립서비스

○ 프로듀서 vs 프로듀서

‘아이 러브 유’는 동생 도권 씨의 ‘뮤지컬 프로듀서’ 데뷔작. 그동안 그는 기획, 제작보다는 공연 마케팅에 주력해왔다.

“저도 형의 뒤를 이어 프로듀서로 나서긴 했지만 서로의 ‘영역’은 구분했습니다. 형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등 대형 뮤지컬 작품에 주력하고, 저는 앞으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서 고를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따로 또 같이’ 뮤지컬 한솥밥을 먹은 지 올해로 꼭 10년. 형제는 요즘 ‘공동 프로듀서’로 함께 이름을 올리는 첫 작품을 준비 중이다. 2001년 토니상 전 부문에 후보로 선정돼 12개 부문을 석권함으로써 역대 최다 수상기록을 세운 뮤지컬 ‘프로듀서스’. 브로드웨이의 노련한 뮤지컬 프로듀서와 신참 프로듀서가 투자금을 갖고 튀기 위해 일부러 작품을 망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의외로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일이 꼬인다는 내용의 코미디.

이런 ‘사기 행각’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제작비 부풀리는 ‘이상한 프로듀서’도 있는 건 사실이에요. 이 작품 투자금으로 저 작품도 만들고, 나중에 다시 채워 넣는 주먹구구식 자금운용도 없지 않고요. 뮤지컬이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투명한 회계가 중요합니다.”(도윤)

○ 빅설 vs 리틀 설

외국의 프로듀서들은 형을 ‘미스터 설’로 동생을 ‘리틀 설’로 구분한다. 국내에서는 형은 “설 대표”, 동생은 “설 사장”으로 불린다.

성악 전공의 형과 경영학을 공부한 동생은 전공만큼이나 성격도 다르다.

형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동생은 구체적인 수치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가령 “티켓 가격을 30% 할인하면 판매가 50% 증가한다”는 식.

외향적인 성격의 형은 사람 만나기를 즐기지만, 동생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성격에 맞게 형제는 일찌감치 ‘업무 분담’을 했다.

‘음주가무’ 및 ‘골프’와 관련된 일은 형이, 나머지는 동생이 맡는다. “형이 좋은 일만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동생의 대답. “그게 좋은가요? 내가 보기엔 그런 형이 안쓰러운데….”

○ 사고쟁이 vs 수습쟁이

인터뷰 사진을 함께 찍으면서도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며 어색해 했지만, 형제의 정은 남다르다. 경북 포항 출신인 두 사람은 어릴 때 서울에서 단둘이 하숙하며 학교를 다녔다.

“나는 늘 ‘사고쟁이’, 동생은 항상 ‘수습쟁이’였다”고 스스로 인정하듯 형은 크고 작은 수많은 사고를 쳤다. 군 복무 중 나이트클럽에 간다고 군 차량을 몰래 끌고 나왔다가 차 사고를 냈을 때도 형은 동생부터 불러냈다.

‘사고쟁이-수습쟁이’의 관계가 역전된 것은 1990년 이후. 이것저것 일을 벌이던 동생이 사업에 실패하자 형은 말없이 퇴직금을 모두 털어 빚을 갚아줬다. 지금은? 이젠 형제가 함께 사고를 치는 것 아니냐는 말에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 우리가 ‘프로듀서스’ 주인공 되는 거죠.”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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