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밀레와 畵友들’ 31명을 만난다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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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앙 작 '추수 후의 휴식'(연대미상)
페이앙 작 '추수 후의 휴식'(연대미상)
《어린 소년은 자라면서 집에 걸려 있던 한 장의 그림에 늘 눈길을 주었다. 평온하고 경건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곤 했다.

나중에 소년은 이 그림이 프랑스 화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에 걸려 있던 것은 그림을 찍은 사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년은 곧, ‘저 그림을 원화로 가져야지’ 열망한다. 소년은 사업가로 성공했다.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돈을 버는 족족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애당초 갖고 싶었던 ‘만종’을 살 수는 없었지만, 밀레의 다른 그림들을 샀다. 》

밀레를 시작으로 한 그의 명화 컬렉션은 밀레가 살았던 프랑스 바르비종 지역 화가들의 것으로 집중됐다. 그렇게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현대 미술사의 획을 그은 바르비종파 화가들 작품을 다량으로 가진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컬렉터가 되었다.

주인공은 재일교포 진창식(72) 씨.

아버지가 경남 마산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효고 현 히메지 시에서 태어난 진 씨는 재일교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갖은 고생 끝에 기업인으로 성공한다. 건축업 등 그의 사업 원동력은 바로 그림수집이었다고 한다. 진 씨는 “그림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았고 그림에서 얻은 감수성이 비즈니스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고 회고했다.

마침내 수집품들을 모아 1999년 히메지 미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무려 2만 여 명의 관람객이 올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에 자극을 받은 진 씨는 지금까지 일본 내 12개 도시에서 순회전시회를 가졌고 대만국립역사박물관 전시도 했다. 그는 점차 ‘이 그림들을 내 나라 사람들과 같이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드디어 그의 꿈이 이뤄진다.

10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제5, 6전시실)에서 열리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전시는 미술을 사랑한 한 컬렉터의 집념이 집약된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익숙했던 프랑스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명화가 집대성되었다.

바르비종은 프랑스 파리 교외 퐁텐블로 숲 부근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지만 18세기 인상주의 태동에 영향을 준 하나의 미술사단의 이름이 되었을 정도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밀레, 루소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지역 풍경과 농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 그림을 왕이나 귀족들만의 것에서 서민들의 것으로 끌어내린 ‘예술의 혁명가’들로 불린다.

이번에 국내에 온 진 씨 컬렉션은 이른바 ‘바르비종의 일곱 별’이라 불리는 밀레, 루소, 코로, 도비니, 뒤프레, 디아즈, 트루아용을 포함한 31명의 작품 106점.

밀레 작품으로는 물을 가득 채운 물통을 운반하는 시골 여자를 그린 ‘우물에서 돌아오는 여자’와 만년의 걸작으로 꼽히는 ‘밭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에게 낯익은 명화 ‘이삭줍기’의 구도를 잡기 위해 제작한 판화 등 22점이 전시된다.

여기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프랑스 낭만주의 풍경화가로 평가받는 코로의 작품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들. ‘데이지를 따는 여인들’과 ‘새 둥지를 모으는 아이들’ 등 19점이 나온다.

이중 ‘해질 무렵 그물을 끄는 어부’는 주변 나무들과 바위, 인물들을 하늘과 수면의 밝음과 대비시켜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어부의 모자에 빨간색을 칠해 포인트를 주었다. 코로의 그림들에는 농경사회가 도시사회로 급속히 변모되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이상향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

이 밖에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쿠르베의 ‘부채를 든 여자’ 등 유화 4점도 함께 전시된다. 진 씨가 5억여 원에 이르는 작품 대여료를 받지 않아 보험료와 운송비만 예술의 전당 측이 부담했다. 8월 28일까지. 성인 9000원, 초중고교생 7000원 4세 이상 어린이 5000원. 02-580-1300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바르비종파:

프랑스 파리 교외의 풍텐블로 숲 부근에 있는 작은 마을 바르비종. 이곳에 모여 살면서 작업을 하던 화가들을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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