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형준]‘우물안’ 벗어나는 한국문학

  • 입력 2005년 5월 1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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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문학포럼이 24일 열린다. 행사에 참가하는 저명한 해외 문인 중에 특히 내 눈길을 끄는 사람은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이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꽤 알려졌고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세계 저명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유독 그의 이름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우리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형제 국가’라는 터키가 가진 파묵 같은 작가를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 문학과 문화 수준이 낮아서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 문학과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을 그간 너무 소홀히 해왔던 탓이라고 본다.

올해는 우리 문학이 세계로 뻗어가는 원년(元年)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서 세계 각국의 주목을 어느 해보다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3월 한국의 대표작가 16명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의 사전행사인 ‘한국 작가 독일 순회 낭독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독일로 가기 직전 잘 알고 지내는 작가 한 분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한국에선 대가지만 독일에선 신인작가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 작가는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그 현실의 벽을 넘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의 또 다른 기획인 ‘한국의 책 100’의 번역과 해외 출판 사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책을 번역해 해외에 내놓기만 하면 외국에선 감동과 찬탄을 터뜨리며 얼른 받아들이리라는 섣부른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우리 눈에 어른거렸던 것은 높디높은 현실의 벽들이었다.

‘한국의 책 100’의 번역 원고를 건네받은 해외의 굵직한 출판사들은 그 가치를 알아볼 자국 전문가들이 너무 없다고 털어놓는다. 한국 문화가 해외 독자에 너무 알려지지 않아 출간할 용기가 안 난다는 솔직한 고백도 했다. 역시 문제는 우리 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손을 놓고 있겠는가. 이를 악물고 굴욕스러운 일들을 겪어내다 보니 결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독일의 발슈타인출판사, 중국의 베이징 런민원쉐(人民文學)출판사, 일본의 헤이본(平凡)출판사 등과 계약에 성공했다. 미국의 불교전문 출판사인 샴발라는 ‘한국의 책 100’ 가운데 법정 스님의 ‘선가 귀감’을 아무 지원금도 받지 않고 펴내겠다고 제안해 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책 100’과 상관없이 한국 문학 소설집이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을 여러 해외 출판사가 세웠다는 사실도 기대를 갖게 한다. 독일 최고의 주어캄프와 데테파우(dtv) 출판사는 한국문학선집 출간을 준비 중이다. 데테파우는 황석영의 ‘손님’ 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모두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우리가 주빈국으로 참여하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김훈 씨의 소설 ‘칼의 노래’가 프랑스의 세계적 출판사 갈리마르의 대표적 문학선집 ‘뒤 몽드 앙티에(Du Monde entier·전 세계)’의 한 권으로 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져 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이 책 번역을 지원했다. 우리 문학이 세계로 진출하는 원년의 청신호가 켜지는 것 같다.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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