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우린,죽어도 뺀다…‘살·미·도’

  • 입력 2005년 5월 12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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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안 빠진다고요?” “비∼겁한 변명입니다∼.” 유격 훈련 중인 해군 기초군사학교 특별 소대원들. 체중 감량의 즐거움은 이들의 복무 생활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살이 안 빠진다고요?” “비∼겁한 변명입니다∼.” 유격 훈련 중인 해군 기초군사학교 특별 소대원들. 체중 감량의 즐거움은 이들의 복무 생활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나도 한때는 이렇지 않았다.

위로 올라붙은 탄탄한 가슴. 주먹만 한 엉덩이. 역삼각형의 등….

그러나, 살….

네가 불어난 뒤 몸매도, 사랑도, 청춘도 모두 떠나 버렸다. 그래서 입대 영장이 나오기 전에 난 이곳을 자원했다.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뿐인 특수 부대.

해군 수중파괴대 UDT에도, 특전사에도, 공수부대에도 없는 대한민국 해군 기초군사학교 ‘특별 소대(비만 소대)’. 훈련 과정 자체가 다이어트인 이들 부대는 일명 ‘살미도 부대’로 불린다. 좌우명은 ‘우린, 죽어도…뺀다’.

○ 해군 특수부대 ‘살·미·도’

이 소대는 해군 기초군사학교(학교장 이재헌 대령)에 입소한 훈련병 중 몸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체력이 약한 이들만 모은 소대. 지난해 4월부터 기수마다 30∼100여 명이 특별 소대로 편성됐으며 현재 입소한 506기(740여 명) 중 1개 소대 61명이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 소대원은 몸무게가 85kg 이상이거나 체력이 현저하게 약한 사람이다. 506기의 경우 80∼110kg까지 다양하며 윗몸일으키기 20여 개, 팔굽혀펴기를 10여 개밖에 못하는 이도 있다.

이 소대가 생긴 이유는 입대자 중 과체중자의 비율이 평균 10%가 넘어 다른 훈련병과 보조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 구보만 해도 다른 훈련병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기가 어려우니 유격이나 행군 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헬스클럽처럼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게 아니다. 훈련 자체는 다른 병사들과 같다. 다른 점은 매주 토요일마다 체중계로 몸무게를 측정해 변화를 알려주며 훈련의 강도를 조절해 주는 것뿐. 기상 취침 및 식사 전에 요가와 운동 및 구보를 하는 것도 여느 소대와 다른 점이다.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소대원 전체가 같은 목적으로 뭉쳐 있다는 점. 대부분 이 소대에 자원한 까닭에 식사량도 스스로 줄이고 운동도 자발적으로 한다. 이들은 우선 식사량을 줄여 살을 뺀다. 훈련 3주째인 현재 9∼12kg이 빠진 상태다.

기자가 방문한 날 취침 직전, 구령과 함께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이미 구령 전에 스스로 하고 더하기도 했다.

○ 차라리 날 쏘고 먹어라!

목봉 훈련은 허리와 배의 살을 빼는 데 효과가 있다. 모든 중대원이 이 훈련을 받지만 특별 소대원들은 이를 다이어트 과정의 하나로 여긴다. 강병기 기자

군에 다녀온 이들이라면 훈련소에서 배고픔이 얼마나 참기 어려운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전에 입소한 504기 중에는 6주 훈련을 끝낸 마지막 날 밤, 초코파이를 훔쳐 먹다가 들켜 다시 들어온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오가 다르다.

“동기들끼리 먹을 게 생각나면 ‘차라리 날 쏘고 먹어라’며 말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살 때문에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싶지 않습니다.”

입대 전 171cm, 87.2kg이었다는 황두현(21·현재 78kg) 훈련병은 “뚱뚱하다고 인간성 좋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말을 안 할 뿐 모두들 살 때문에 받았던 서러움을 처절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소대원 상당수가 입대 전 운동선수였거나 체육대학 출신자라는 점. 훈련병 소대장인 허수행(22·입대 전 92kg →현재 82kg) 씨는 복싱 선수 출신으로 중학생 때 충남지역 라이트 웰트급 3위 입상자다.

운동선수가 왜 비만소대에 들어왔느냐고 묻자 그는 신병 특유의 목소리로 “한순간에 변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운동을 잠시 쉬니 먹는 것은 그대로이고 운동량만 줄어 일반인보다 더 찌더라는 것. 킥복싱, 태권도 선수 출신인 다른 소대원들도 마찬가지다.

태권도 검은 띠 선수 출신인 한 소대원도 같은 질문에 “좀 놀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9월에 군 태권도 경기 출전을 목표로 살을 빼고 있다. 이처럼 살찐 이들에게는 통상의 훈련도 더 힘들다.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죠. 입대 전에도 몸무게 때문에 무릎이 시리고, 걸으면 숨이 찼어요. 근데 정신없이 한 주가 가고 체중계를 보니 3kg이 빠졌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시간 가는 게 즐거워요. 힘들기는 하지만…. 절대로 부대에서 시켜서 하는 말 아니에요.”

익명을 요구한 한 비만 소대원은 “요즘은 1, 2kg은 하찮아서 감량한 것으로 치지도 않는다”며 “퇴소 후 과거를 지울 생각이니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먹는 밥은 다른 소대원의 30% 수준. 덕분에 이번 주에 치르는 3일간의 극기 제한 급식 훈련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 기간에는 주먹밥 정도의 식사만 제공된다.

이 훈련은 다른 소대에는 공포의 훈련. 연병장 야외 화장실에는 선배 훈련병들이 벽에 적어놓은 ‘건빵 챙겨라. 제한 배식 죽음이다’ ‘초코파이님을 숭배하자!’ ‘종교 활동 꼭 해라 슈크림 준다’ 등 먹을 것과 관련된 글이 빼곡하다.

○ 장하다! 비만소대!

기자가 방문한 날 비만소대원 일과. 위부터 기상과 함께 시작하는 요가체조,오전 유격훈련, 소대원의 점심식사량, 체중 측정, 취침 전 윗몸일으키기.

사람을 몸무게로 분류하는 행위는 일종의 차별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우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김혁규(20·입대 전 89kg →현재 79kg) 훈련병은 “물 1L가 1kg이니 10kg이면 1.5L 콜라 7개는 달고 다닌 셈”이라며 “이 살 때문에 벅스 뮤직 6대 얼짱인 여자친구 만나기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고민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 자긍심은 살이 빠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점차 커졌다. 이들의 마음은 여자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미니스커트를 자신 있게 입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듯했다.

이날도 목봉 훈련 직전 조교가 몸이 아픈 사람은 나오라고 말하자 중대 전체에서 25명이 나갔지만 특별소대에서는 한 명도 나가지 않았다.

물론 이들 중에도 아픈 사람은 있었다. 훈련을 함께 받기 위해 서 있는 기자 주위에서도 동기들이 “야, 너 아프잖아. 발 벗겨졌잖아”라며 나가라고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나가지 않았다.

“정신력의 차이죠. 실제로 훈련을 못 받을 정도의 외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살이 빠지면서 생긴 자긍심이 매사를 ‘해 낼 수 있다’고 만드는 것 같아요.”

소대장 강성은 상사의 말이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매 기수 중 한 개 소대만 선발하는 ‘명예 소대’에 505기 특별소대가 선정됐다. 명예소대는 훈련 성과, 낙오자 수, 내무 생활태도 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 IN THE NAVY!

요즘 군대는 크게 달라졌다. ‘침상 위 수류탄’ ‘원산폭격’ ‘한강철교’ 같은 얼차려는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해군의 경우 훈련 기간 중 담배도 절대 피울 수 없다. 살 빠짐과 동시에 담배도 끊을 수 있다.

특별소대의 경우 입대 직후와 훈련소 퇴소 직전의 사진을 함께 찍어 본인에게 준다. 다이어트 광고처럼 몰라보게 달라진 훈련병들.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고 난 이후 다시 전처럼 살이 찌는 이도 다수 있다.

그래서 훈련병 중에는 매일 기록하는 ‘수양록’에 ‘퇴소 후가 더 중요하다’ ‘살과의 전쟁을 영원히 선포하리’ 등을 ‘엄숙하게’ 쓴 이도 꽤 있다.

해군 교육사령부 유영식 중령은 “교육에 중점을 두지 않는 군대는 미래가 없다”며 “특별소대의 성공은 병사 개인이 군 복무에서 자긍심을 느낄 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도…살 “쏙쏙” 회사사랑 “쑥쑥”▼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해 더 이상 남은 인생을 다이어트에 저당 잡혀 살지 않을 것이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51) 조리부장은 3월 말부터 이런 선언문이 적힌 ‘셀프 모니터링 다이어리(Self-Monitoring Diary)’를 가지고 다닌다. 매일 먹은 음식과 시간별 활동내용(앉기 걷기 운동 잠자기)이 적힌 다이어트 일지다.

20대 때 67kg으로 날렵했던 배 부장은 지금은 90kg의 거구다. “주방장이 뚱뚱해야 요리가 맛있다”는 말대로 요리하면서 맛을 아낌없이 보다보니 자연스레 풍만한 몸매를 얻게 됐다.

배 부장이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은 이 호텔이 3월 29일 ‘다이어트 클리닉’을 열면서부터다. 지난해 건강검진 결과 전 직원의 절반이 비만 또는 과체중으로 나오면서 이 호텔은 집단 다이어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원은 112명. 남성과 여성이 7 대 3 정도다. 이들은 비만클리닉의 정밀 진단을 거쳐 각각 권장 식단과 운동 처방을 받은 뒤 매주 한 번씩 건강관리실에서 혹독한 심사를 받는다. 건강관리사가 몸무게를 재고, 하루 섭취한 칼로리와 운동량을 계산해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

클리닉을 연 지 한 달이 지난 요즘 참가자의 85%가 평균 2.5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10kg 가까이 뺀 사람도 많다. 텅 비어 있던 직원용 헬스클럽이 사람들로 붐비고, 구내식당의 식단도 야채 중심의 저칼로리 음식으로 바뀌었다.

참가자들이 말하는 다이어트 최대의 적(敵)은 회식. 회사 모임에서는 동료들이 배려해 주곤 하지만 친구 모임에서는 “혼자만 잘 살겠다는 거냐”며 핀잔을 줘 할 수 없이 폭식하게 된다는 것. 이런 경우는 다음날 운동량을 30분 늘린다.

현재까지 체중 조절에 실패한 직원들의 대부분은 밥 대신 과자로 끼니를 때워 온 경우. 이 중 가장 잘못 알려진 음식이 ‘뻥튀기’다. 동그란 뻥튀기는 봉지당 367Kcal로 밥 한 공기(300Kcal)보다 칼로리가 높다.

직원들의 건강 증진이 사기 진작으로 이어지면서 기업 경쟁력도 높아진 게 이 프로젝트 최대의 성과다. 연회담당 위성훈(47) 지배인은 “회사가 직원의 세세한 건강 문제도 챙겨주니 일할 맛이 절로 난다”면서 “건강해지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배 부장은 “개인이 건강하지 않으면 피곤해지고, 짜증이 많아져 주변 직원들과 마찰이 잦아지는 등 결과적으로 조직까지 해친다”며 “사원들이 건강과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조직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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