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한손 마비 번뇌는 소리로 허공에 날리고…

  • 입력 2005년 4월 29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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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을 없애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뜻의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바로 대금입니다. 대금은 단지 악기가 아니라 번뇌와 망상을 없애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수행의 도구지요.”

이삼(二三·56)스님은 출가 수행자로서, 또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으로서 대금을 연주해 국악계의 기인으로 통한다.

스님은 20세 때인 1969년 경기 화성 용주사로 출가한 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염불 학습법을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국악의 가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거문고 단소를 거쳐 우연한 기회에 무형문화재 20호이자 대금정악 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과 인연을 맺어 대금을 배우게 됐다.

꾸준하면서도 가녀린 호흡법이 관건인 대금 연주가 곧 번뇌와 망상을 없애는 수행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열심히 대금 수행에 정진, 1985년 국립국악원 주최 국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9년 여름 교통사고로 시신경과 목뼈를 다친 데다 오른팔이 마비돼 한 때 대금을 놓아야 했다. 왼손으로 세 구멍을, 오른 손으로 또 다른 세 구멍을 연주해야 하는 대금 연주자로서 한 팔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비극이었다.

스님은 “연주가 목적이 아니라 수행이 목적”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쪽 손으로 대금 연주를 시작했다. 마침내 1년여 연구 끝에 한 악기 개량가의 도움을 받아 한 손으로 불 수 있는 자신만의 대금을 만들어 ‘여음적(餘音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음적은 세 개의 피리구멍에 각각 뚜껑을 만들고 이의 여닫음을 조절할 수 있는 키를 붙인 겁니다. 손이 닿지 않는 나머지 구멍들을 왼손으로 조종하는 셈이지요.”

지난해 3월27일 대구 문예회관에서 가진 첫 독주회에는 300석 정원에 무려 1500여 명이 몰려 스님의 재기 연주를 축하했다. 이후 스님은 제주, 경기 양평, 인천 강화 등 전국 각지의 문화행사와 산사 음악회에 초대돼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최근 대금 독주 음반 ‘여음적 대금정악’(신나라)을 냈다. 이 CD에는 곡절 많았던 스님의 30년 대금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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