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잃어버린 왕국 대가야’ 外

  • 입력 2005년 2월 18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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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제철기술과 금속세공 기술을 인접지역과 왜에까지 널리 전파한 기술대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도굴당한 뒤 1981년 일본인에 의해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된 6세기 대가야 금관의 일부. 사진 제공 창해
대가야는 제철기술과 금속세공 기술을 인접지역과 왜에까지 널리 전파한 기술대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도굴당한 뒤 1981년 일본인에 의해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된 6세기 대가야 금관의 일부. 사진 제공 창해
《아침, 문을 열면 언 흙이 녹으면서 풍기는 신선한 대지의 냄새가 밀려든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일상에 발이 묶여 짐을 꾸릴 수 없다면, 책갈피를 열어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선인들의 자취를 따르며 역사책 속의 숨겨진 장(章)들을 넘겨보는,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김채한 외 지음/325쪽·2만9000원·창해

◇우리 신앙유산 역사기행/이충우 글·전대식 사진/670쪽·2만 원·사람과 사람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는 300여 년에 걸쳐 한반도 남부의 강자로 군림했던, 잊혀진 고(古)왕국을 탐색한 역사 기행서. 현직 기자인 네 사람의 저자는 역사의 패배자로 사라져 간 왕국의 자취를 찾아 대가야의 발상지인 경북 고령에서 전북 순창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누볐고, 당시 국가간의 합종연횡을 규명하기 위해 일본열도 서부와 중국 남제(南濟)의 자취를 넘나들었다. 충주 탄금대에 올라 기암절벽 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환청으로 들리는 우륵의 가야금 가락에 젖고, 옥천 양수리 ‘말무덤고개’에서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 군락을 보며 대가야 멸망의 전초가 된 관산성 전투의 비극을 떠올린다.

발로 뛰어 얻어낸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삼국시대’를 ‘사국시대’로 고쳐 써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가야는 멸망 직전까지 고도의 제철기술 및 고구려 백제 신라와의 등거리외교를 통해 누구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세력을 형성했다. 2003년 말 전북 순창에서 대가야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대가야의 강역(疆域)도 대폭 수정되었다. 전성기의 대가야 세력권이 호남 깊숙이 미쳤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 제국(諸國)이 왜(倭)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일본 사학계의 주장에 대해서 저자들은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왜의 유물이 가야에서, 가야의 유물이 왜에서 발견된 사실만으로 주종관계를 유추하는 것은 침략사관에 따른 역사해석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왜에 뿌려진 가야의 문물은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한 대가야의 정치적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신앙유산 역사기행’은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이 독자적 학문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조선의 천주교 유적을 찾아가는 기행서. 저자는 “교회가 ‘성지’라는 이름을 붙여 개발한 곳 외에 아직 성인(聖人)에 오르지 못한 순교선열들의 삶이 배어 있는 이름 없는 사적지들을 돌아보았다”고 밝힌다.

저자는 한국교회사를 장식한 인물들을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올려놓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오히려 사도 베드로처럼 인간적일 수밖에 없었던, 때로 비겁하기도 했던 그들의 고뇌를 눈여겨보자고 설득한다. 예산 신종리의 이존창 생가 터에서는 그가 한때 배교해 생명을 연장했지만 그 뒤 기도와 전도로 남은 나날을 보내다 발각돼 처형된 사실을 상기한다.

‘서소문공원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저자의 제안은 눈길을 끈다. 이곳은 1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순교해 한국에서 가장 큰 순교성지였다. 이승훈은 1801년 이곳에서 순교하기 직전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는 시를 읊었다. 세간의 시선이 어떠하든 신앙은 오직 마음속에 있을 뿐이라는 그의 고백을 기려 ‘솟구치는 물’을 형상화하자는 제안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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