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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5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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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갖고 보면은 다음달 3일 개봉되는 ‘영 아담(Young Adam)’은 판에 박힌 내용의 에로틱 스릴러다. 나이 든 남편과 성에 굶주린 아내, 싱싱한 젊은 남자가 만드는 삼각구도하며, 조와 살해된 여인의 연관성이 서서히 꺼풀을 벗는 내용이 그렇다.
하지만 뚜껑을 열면 영판 다르다. 이 영화는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느낌도, 스릴러의 생명인 속도감과 반전도, 심지어 야한 이미지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영화는 사실 살해범이 밝혀지는 과정에 큰 관심이 없다. 숱한 섹스 신에도 정작 ‘유혹’이란 단어는 빠져 있다. 어떤 줄다리기나 거부도 없으며, 반대로 어떤 유희나 열정도 없다.
조와 엘라, 조와 엘라의 친언니, 조와 하숙집 여주인의 섹스를 연달아 쫓아가는 이 영화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조가 벌이는 ‘섹스 오디세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성욕’이다. 피할 수 없는 성욕이다. 조의 퀭한 눈, 그의 꾀죄죄하다 못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살갗, 엘라의 겨드랑이에 마구잡이로 난 터럭, 그녀의 투박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젖가슴에 초점을 맞추는 이 영화는 기존의 성적 상징들이 갖는 이미지를 배반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섹스는 ‘잘 빠진’ 남녀 사이에 오가는 유혹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성욕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올란도’ 등의 영화를 통해 주로 중성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온 틸다 스윈튼을 엘라 역에 기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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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이라는 새 운송수단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바지선의 고립무원 이미지, 글래스고 운하가 가진 단정하면서도 어딘지 숨 막히는 경치에 이런 전복된 성(性) 이미지들을 중첩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화면 자체로 축축하고 무거운 성욕을 발산한다. 애정행각이 남편에게 발각되는 순간조차 조와 엘라의 반응은 관객의 예상(수선을 떨거나 변명거리를 찾는 등의)을 뒤집는다. 영화는 그러면서 느릿느릿하고 칙칙하고 찐득찐득한 긴장의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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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섹스를 막 마친 엘라의 젖꼭지에 파리가 무심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것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인간의 원죄 같은 성욕이 빚어내는 권태롭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섹스에 초점을 맞춘다. 조가 상대의 몸에 케첩과 설탕을 퍼붓고 구타를 일삼는 섹스행각을 벌이는 모습이 변태적이기보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성기를 보여주는 게 ‘파격 노출’이라면 ‘이완 맥그리거의 파격 노출’이란 선전 문구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의 축 늘어진 성기는 보는 이를 흥분시키기보다는 측은지심이 들게 만드는 쪽이다.
여자가 섹스하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참 오랜만에 제대로 말해 주는 영화다. ‘최후의 황무지’의 영국 출신 감독 데이비드 매킨지의 두 번째 장편.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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