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표암 강세황…천품이 드러난 글과 그림들

입력 2003-12-16 18:31수정 2009-10-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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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작 ‘죽석모란도’-사진제공 예술의전당
18세기 영·정조시대의 선비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2∼1791)의 작품전이 27일부터 내년 2월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蒼松不老), 강세황의 詩·書·畵·評’ 전.

그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문인 예술가였으며 윤순 이한진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위 등 당시 서화계 주역들의 작품에 대해 방대한 비평을 남긴 서화 비평가이기도 했다. 표암은 태어날 때 표범처럼 등에 흰 얼룩무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아호.

이번 전시회에는 초상화 3점, 글씨 40점, 산수인물(山水人物) 30점, 사군자 및 초충화훼(草蟲花卉) 18점, 서화평(書畵評)과 그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23점 등 5개 분야 114점의 작품, 그리고 표암 가문의 장서 등 총 179건의 작품과 자료가 소개된다. 작고하던 해 겨울에 쓴 말년 작 ‘표암유채첩’을 비롯해 중국 남종 문인화를 조선에 토착화시킨 작품들도 공개된다.

표암은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인생의 절정기라 할 만한 32세부터 61세까지 일체의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 안산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 그러다 61세에 능참봉(왕릉 관리인)으로 벼슬길에 올랐고, 71세 때 한성 판윤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10년 만에 9급 공무원에서 서울시장이 된 셈이다.

그는 72세 때(1784년) 중국 건륭황제의 80세 축하잔치에 사절단 부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에서 표암은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건륭황제는 표암의 글씨를 보고 ‘천골개장(天骨開場·뛰어난 재주가 그대로 글씨에 드러나 있다)’이라며 탄복했다고 전해진다. 표암은 중국에 다녀온 뒤 변화된 안목을 바탕으로 78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영·정조시대 조선의 사회 문화 전반을 휩쓸었던 변화의 기운을 예술을 통해 표현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초상화 ‘강세황 칠십일세상(姜世晃七十一歲像·보물 590-2호)’을 제작할 때 들어간 재료 구입비와 구입처, 제작기간 등 모든 작업과정을 자세히 적은 기록인 ‘계추기사(癸秋記事)’도 선보인다. 전시회와 함께 내년 2월 7일에는 표암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열린다. 02-580-151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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