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3! 문화계 키워드5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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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문화계에선 전반적 경기 불황 속에 복고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역사 소재의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모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연예인들의 누드집 출간과 누드 공연등 대담한 표현방식이 눈길을 끌었으며, 온라인문화가 오프라인문화를 능가할 정도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올해 문화계를 정리해본다.》

●복고 붐

출판 전시 영화 가요 등에서 두루 복고 바람이 거셌다.

출판계 복고 붐은 만화가 선도했다. 국내 최초의 SF 만화인 50년대의 ‘라이파이’를 비롯, 길창덕 신문수 박수동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명랑만화들이 복간됐다. 고우영 삼국지는 24년 만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나왔다.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둘리 아빠’ 김수정의 대표작 ‘일곱 개의 숟가락’도 13년 만에 다시 나왔다.

영화계 복고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1980년 뒷골목 고교생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낸 ‘품행제로’는 연초 개봉해 한 달간 130만명이 몰렸고, 올 최고 흥행작인 ‘살인의 추억’은 80년대 삶의 풍경화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복원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에서도 70년대 화제의 영화를 무대화한 ‘토요일 밤의 열기’와 ‘그리스’가 상연됐고 50년대에 개봉한 미국 영화를 각색한 ‘싱잉 인 더 레인’은 20, 30대부터 중년까지 관객층이 폭 넓었다.

TV 드라마와 영화 OST에서는 70∼80년대 유행가가 새롭게 편곡돼 선보였다. 영화 ‘가문의 영광’에선 ‘나 항상 그대를’, KBS 드라마 ‘내 사랑 누굴까’에서는 ‘그 겨울의 찻집’ 등이 흘러나왔다. 가수 한영애는 1920∼1950년대 흘러간 옛 노래 13곡을 새롭게 리메이크한 ‘비하인드 타임(Behind Time)’을 내놓아 중년층에게서 사랑받았다.

8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추억으로-역사를 모으는 사람들’ 전에는 빛바랜 교과서와 못난이 3형제 인형 등 중장년층의 추억을 되살리는 옛날 물건들이 선보였고, 10월에는 LP 음반전도 열려 ‘복고 바람’을 실감케 했다.

●누드 열풍

성형, 피어싱, 성전환 등 사람들의 몸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올해는 ‘누드집’ 열풍이 몰아닥쳤다. 올 한 해 김지현, 김완선, 이주현, 권민중, 이혜영, 이지현, 함소원(사진) 등 연예인 누드 화보집 출간이 봇물을 이뤘다. 탤런트 성현아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누드를 선보여 인터넷 누드 상업화 붐을 선도했다.

누드 열풍은 대중문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페라 ‘리골레토’(9월·예술의 전당)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서울공연예술제(10월·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는 미국 현대무용가 모린 플레밍이 알몸으로 춤을 추는 ‘애프터 에로스’를 선보였다. 세계무용축제에서도 여성 무용수들이 나체로 등장하는 ‘봄의 제전’(10월·예술의 전당)이 화제를 모았다.

미술관에서도 누드를 소재로 한 사진, 판화, 회화 작품들이 선보였다. 여성의 나체를 찍은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전이 2월 초까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려 2만여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남녀 성기를 그대로 표현한 피카소 판화전(7월·호암갤러리)도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 신체표현전(2월·로댕갤러리), 누드전(2월·갤러리 사비나)에서도 과감한 누드작품들이 전시됐다.

●대형화 바람

대형화 바람의 선두주자는 공연계였다. 5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제작비 66억원·사진)에서는 50만원짜리 티켓이 등장했지만 나흘간 총 좌석수 14만석에 11만명의 관객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9월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는 83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형 공연으로 주목 받았다(관객수는 7만여명).

뮤지컬에서도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대형 공연이 등장했다. 현재 서울에서 공연 중인 ‘캐츠’는 제작비 150억원을 들인 대형 뮤지컬. 대형 뮤지컬 바람은 내년에도 ‘마마미아(80억원)’ ‘미녀와 야수(55억원)’로 이어질 전망이다.

출판계에서도 대형 판형에 초호화 장정을 갖춘 ‘슈퍼 북’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288×268mm의 대형 판형의 사진집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까치)는 8만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고대 문명 시리즈’(생각의 나무·총 5권)도 대형 판형에 권당 9만5000원의 고가로 선보였지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술 전시의 경우 덕수궁미술관에서 11월 막을 내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이 올 최고의 블록버스터 전시회로 꼽혔다. 20여만명이 이 전시회를 찾았다.

●온라인 문화 급부상

오프라인 문화시장이 극심한 불황을 겪은 데 비해, 온라인 시장은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동시에 제공하는 ‘문화 엘도라도’로 부상했다.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음반시장. 오프라인 판매 대박이 50만장을 넘기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내 음반업계는 모바일 등 새 매체를 이용한 벨소리 다운로드, 음악편지, 통화 연결음(컬러링) 등 신규 음악 서비스를 활성화했다. 문화관광부는 올해 온라인 음악시장 규모를 다운로드 460억원, 스트리밍(다운로드 없이 실시간 음악 감상) 530억원, 전화이용 서비스 3000억원 등 약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영화계에서도 인터넷을 활용한 홍보가 본격화됐다. 접속 시간대와 매일 날씨에 따라 서비스 내용을 다르게 제공한 ‘불어라 봄바람’(9월 개봉·사진), 깨진 거울 조각들에 영상을 담아 독특한 효과를 낸 ‘거울 속으로’(8월) 등이 눈길을 끌었다. ‘장화, 홍련’(6월) 홈페이지에는 하루 평균 4만여명이 접속해 온라인은 영화 홍보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 오프라인 시장이었던 문학도 올해는 온라인 시장이 선도했다.

2001년 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귀여니’(본명 이윤세·18)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는 3월 책으로 출간돼 12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다. 김유리의 인터넷 연재소설 ‘옥탑방 고양이’는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역사 소재 붐

TV 드라마에서 올 최고 화두를 꼽는다면 ‘역사물의 현대화.’ 예전 사극이 왕이나 귀족 중심의 암투나 위인의 삶을 주로 다뤘다면 올해는 여형사, 궁중 요리사 등 무명의 인물을 부각시켜 오늘날의 대중과 교감을 시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7월 말 방영된 MBC 드라마 ‘조선 여형사 다모’는 이 드라마의 골수팬들을 뜻하는 ‘다모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영화 ‘와호장룡’을 뺨치는 와이어 무협 액션과 파격적으로 삽입된 록 음악 등으로 ‘퓨전 사극’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MBC 드라마 ‘대장금’은 정보와 드라마가 융합된 ‘인포 드라마’의 개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이 드라마는 ‘꿈의 시청률’이라는 50%를 넘기면서 ‘대장금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영화계도 사극 붐이 만만치 않았다. 10월 개봉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산벌’은 각각 300여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무거운 역사의 옷을 벗어던진 두 영화는 과거를 일종의 ‘판타지’적 공간으로 차용한 뒤, 동시대의 감정을 접목해 새로운 흥행 공식을 만들어냈다.

역사 소재는 문학에서도 각광받았다. 조선시대 젊은 실학자들의 모임 ‘백탑파(白塔派)’ 이야기를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를 곁들여 풀어낸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황금가지)과 조선시대 무명 선비의 삶을 돈키호테적으로 그려낸 성석제의 ‘인간의 힘’(문학과지성사)이 주목받았다.

문화부 종합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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