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7년 첫 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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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금요일 밤. 미국 워싱턴의 소련 대사관저에서는 국제지구물리의 해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냉전시대에 동서 진영의 과학자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과학자들의 관심은 당시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던 소련의 로켓기술에 쏠렸다.

소련의 한 과학자가 술에 취해 “우리는 1주일 아니면 한달 안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1주일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자리에 있던 뉴욕타임스 기자가 신문사에서 긴급 연락을 받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게 정말로 올라갔어!”

이때는 이미 소련이 세계 최초로 발사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그들의 머리 위를 두 번이나 지나간 뒤였다.

1945년 2차대전 직후 시작된 미소의 로켓개발 경쟁이 소련의 완승으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날 백악관은 입을 닫았다. 육안으로도 인공위성을 볼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말에 세계인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하는 동안 미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국이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를 ‘제2의 진주만 폭격’에 비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바로 원폭 개발에서 한 발 뒤졌던 소련이 우주공간의 군비경쟁에서 마침내 미국을 추월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공언은 이 같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의식한 것이었다.

‘(지구와) 여행의 길동무’를 뜻하는 스푸트니크의 지구 여행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촉발시킨 냉전논리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래서인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구와 인공위성의 관계를 ‘어긋난 연인’에 비유하며, 그 상실감을 이렇게 읊조렸다.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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