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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4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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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의 한계
승부사에겐 배짱이 필요하다. 특히 심리전 요소가 강한 바둑에선 배짱이 곧 실력의 일부분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사마의의 10만 대군이 몰려오자 성문을 열어놓고 한가롭게 가야금을 탔다. 부하장수 마속의 실수로 대패한 뒤 수천명에 불과한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상황을 꿰뚫어본 두둑한 배짱이었다. 결국 사마의는 이것이 제갈공명의 계략인 줄 알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지나친 배짱은 화를 부른다. 배짱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배짱의 한계를 터득할 수 있다.
고근태 초단은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 중앙 백을 포기하는 배짱을 보였다. 상대가 주춤하자 그는 한번 더 배짱을 부렸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야 했다. 그가 세 번째 배짱을 부리는 순간 상대는 배짱의 허점을 응징해버렸고 승부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백 96이 첫 번째 배짱. 중앙 끊기는 수를 감수하고 일단 우변을 챙기겠다는 것. 여기서 흑은 당연히 101의 곳에 두어 중앙을 챙겨야 했다. 하지만 백의 기세에 눌려 상변(흑 97)으로 향하고 말았다.
역시 백 98이 두 번째 배짱. 이 때도 흑은 101의 곳에 끊어야 했지만 99로 밀고 들어가는 수를 택했다.
백은 여기서 자중했어야 했다. 이제 ‘가’로 지키면 역전의 실마리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더’를 외친 백 100을 보고 흑은 냉정하게 101로 끊어버렸다.
‘배짱’은 결정적 순간에 한 두 번 효과를 볼까말까한데 고 초단은 그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128…44. 소비시간 백 3시간 18분, 흑 1시간 58분. 133수 끝 흑 불계승.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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