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114안내원 되어 만난 '세상 목소리'

입력 2003-06-12 16:48수정 2009-10-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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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가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 한국인포서비스㈜에서 114 안내원 체험을 하고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소파에 드러누워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 114 안내를 이용한다면 월말 전화요금에 통화 건당 100원이 부과될 것이다. 그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114 인터넷 사이트인 ‘나이스114’(www.nice114.co.kr),‘렛츠114’(www.lets114.co.kr)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몇 초간의 부팅 과정을 거쳐야 한다.

100원의 경제적 기회비용을 들이기로 하자. 스타카토 터치로 1,1,4 버튼을 누르니 여자 안내원의 목소리가 실려온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늘 수화기 너머 말로써만 소통하던 114 전화번호 안내원이 직접 되어 ‘보이지 않는’ 우리 시대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 114 안내원으로의 변신

현재 114안내 업무는 2001년 KT에서 분사한 한국인포서비스㈜ (KOIS)와 한국인포데이타㈜ (KOID)가 담당하고 있다. KOIS는 서울 경기 강원 지역, KOID는 충청 영호남 제주지역의 114 안내전화 서비스를 전담한다. KOIS에 1081명, KOID에 1861명 등 전국에 19∼58세의 안내원 2942명이 전국민의 114 안내 문의에 답해주고 있다. 안내원의 평균 연령은 29세.

KOIS의 경우 1995년 40명의 남자 안내원이 입사했으나 지금은 모두 다른 부서로 옮겼다. 남녀 고객 모두 남자 안내원의 바리톤 음성 안내를 껄끄러워했다는 것이 KOIS 이병찬 상무의 설명이다.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KOIS 빌딩 중 4층의 서울본부 안내실.

안내원 체험을 해 보겠다는 부탁에 KOIS 관계자들은 비둘기빛 유니폼까지 준비해줬다. 2000년부터 안내원들을 대상으로 고객만족 서비스를 교육하는 이지록 강사(26·여)가 ‘114 안내 교안’이라고 적힌 베이지빛 표지의 책자와 뚜껑이 달린 길쭉한 머그컵을 건넸다. 하루 8시간을 꼬박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일하는 안내원들은 컴퓨터 전자파가 마시는 물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염려해 꼭 뚜껑이 달린 머그컵을 사용한다는 설명과 함께.

114 안내 교안에는 컴퓨터 단말기 사용법과 함께 서울 지도가 포함돼 있다. 안내원들은 서울 지도를 그림째 몽땅 외운다. 강서구 공항동에 사는 고객에게 인근 개화동의 치킨집을 안내해주는 것과 멀리 떨어진 염창동의 치킨집을 안내해주는 것의 서비스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안내원 교육의 하이라이트는 발음 훈련과 응대 표현 암기이다.

이 강사의 안내에 따라 우선 어려운 발음 연습을 했다.

‘들의 콩깍지는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깐 콩깍지면 어떻고 안 깐 콩깍지면 어떠냐….’

114 응대 멘트는 각종 상황에 따라 23가지 매뉴얼로 정형화돼 있다. 다음은 1번 ‘표준 응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네∼. 숭인동에 있는 제일학원 말씀이십니까?

―네∼. 제일학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발음에서는 단번에 ‘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114 응대 멘트 교육에서는 꽤 시간이 걸렸다. 8음계 중 솔 음을 내는 이 강사의 날아갈 듯한 발음과 ‘네∼’ 하며 꼬리를 빼는 어투가 “닭살 돋는다”는 것이 기자의 주장이었고, 의무사항은 아닐지언정 “네∼”라는 맞장구 화법을 실은 솔 음이 가장 상냥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이 강사의 철저한 교육 방침이었다. “∼요” 대신 ‘(습니)다’, ‘(입니)까’로 말을 끝내는 이른바 ‘다나까’ 화법은 114 안내원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튀어나온다고 한다.

● 낮 이야기

1935년 경성전화국에서 시작된 114 전화번호 안내서비스는 1981년 전산화돼 안내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전화번호 검색 기능을 익혀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았다.

20년 경력의 한 안내원은 말했다.

“시내 어느 지역에서 수도관이 터졌는지, 불이 났는지 가장 먼저 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한 꼬마아이가 114에 전화를 걸어 붕괴 사실을 알려왔다.”

시간당 100건 이상의 전화번호를 안내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한다는 안내원들의 설명이 절로 실감난다.

기자가 1시간 동안 안내한 80곳의 장소 중에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캐피털회사, 신용카드 회사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빚에 쫓기는 신용불량자들의 채무상환을 돕기 위해 결성된 은행들의 자율협의체로 신용불량자들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신생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잦은 전화번호 안내로 인해 114 안내원들에게는 익숙하다.

“채무 집행을 해야 한다”며 각각의 주소지를 대면서 5명의 전화번호를 한꺼번에 묻던 모 캐피털회사 직원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템포가 빨랐다. “요즘 집값 때문에 허덕이는 사람을 위한 국세청의 부서 번호를 안내해 달라”, “임금체불을 담당하는 서울지방노동사무소의 관할 부서는 어디인가”라고 묻는 중년 남자들의 목소리는 차라리 건조하게 들렸다.

이날 안내원 50명에게 즉석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낮 시간에 안내 문의를 많이 받는 장소는 신용카드회사, 이동통신회사의 고객센터, 로또복권, 택배업체(퀵서비스), 피트니스클럽, 패밀리레스토랑, 영화관 등으로 나타났다. 성형외과, 유학센터, 명품 매장이라고 답한 응답도 눈에 띄었다.

한 할머니가 전화번호 ‘100번’을 어떻게 누르는 거냐고 문의하기에 “할머니, 1을 한 번 누르고 0을 두 번 누르시면 돼요”라고 답했더니 할머니가 깊이 고마워하더라는 사연, 언어 장애인의 문의 전화를 끝까지 경청해 원하는 번호를 안내한 사연, 아내의 갑작스러운 출산을 맞아 당황해하는 남편에게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를 알려준 사연, 죽은 딸이 그리워 “천국의 전화번호가 몇 번이냐”고 묻던 노신사의 사연…. 월 급여 70만∼130만원을 받는 114 안내원들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서는 인정(人情)이 다양한 표정으로 새어 나왔다.

● 밤 이야기

KOIS 사무실에서의 전화번호 안내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정상근무팀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일하는 야간 전담반이 있다. 그렇다면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안내는 누가 어디에서 하는 걸까.

KOIS는 1997년부터 114 안내원의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안내원 전원이 여자인 점을 감안해 고안한 근무 방식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현재 94명의 재택근무 안내원 중 밤에 일하는 안내원은 75명이며, 이 중 지체장애인이 10명이다. 이들이 오후 10시 이후 심야의 114 안내 업무를 전담하는 것이다.

5월 30일 0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114 안내원 박경희씨(31)의 집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 동안 박씨의 집 컴퓨터 앞에서 또다시 114 안내원이 됐다.

밤 시간의 114는 낮 시간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밤에 신용카드를 분실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리운전, 콜택시, 야식 전문점, 안마시술소, 모텔, 술집, 병원, 파출소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 KOIS 사무실 여기저기 걸려있는 ‘국민의 비서 114’라는 표어에 수긍이 간다.

마침 MBC TV ‘100분 토론’이 방송된 날이어서 청와대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가 많았다. 각 방송사의 심야토론이 방송되는 날이면 114는 정치적 불만의 집결지가 된다. 청와대와 각 당사, 토론에 참여한 국회의원의 집 전화번호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

비 오는 날이면 “자살하고 싶다”는 전화, 음란 전화도 단골 메뉴다.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어달라며 신음소리를 내는 남자, 속옷 색깔을 묻는 남자, 몸의 털 개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 그러나 걱정할 바 아니다. 114 안내 교안의 응대 멘트 21번 ‘장난·욕설 등의 경우(정중+단호하게)’를 적용하면 된다. “고객님, 저희 114 안내에서는 장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끊겠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말한다.

“114 안내원을 향한 일반인들의 언어 행태는 유사(類似) 익명성을 가진다. 온라인상의 음란·욕설은 구술문화가 문자에 스며들면서 ‘비이성적 문자’를 만든 것이고, 114 문의 전화는 사이버적 특질이 언어에 스며든 경우다.”

● 114 안내원은 당신을 알고 있다

114 안내원 체험을 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114 안내원들이 전화번호 안내를 위해 늘 들여다보는 컴퓨터 단말기에 전화번호 문의고객이 사용하는 전화의 가입자 정보, 즉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매번 화면에 뜨는 것이다. 이 정보는 KOIS에 전화번호안내업무 등을 위탁하고 있는 KT에 3개월간 보존된다.

KOIS 이선근 경영지원실장은 “전화요금 과금의 필요성과 정확한 안내 서비스를 위해 문의자 정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KT 홍보실 성원제 과장은 고객의 전화가입 신청서 하단에 작은 글씨로 쓰인 ‘※본인은 위 신청 시에 게재한 정보를 귀사가 수집함을 동의하며, 보다 나은 고객 서비스 제공을 위해 귀사가 활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데 동의합니다’라는 문구를 제시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법조계 인사들의 견해는 달랐다. “가입자 정보를 안내원에게 노출시키는 번호 안내 시스템이 현행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편리한 114도 데이터베일런스(Dataveillance), 즉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감시체제의 말단도구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었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말한다.

“114 안내원을 향한 일반인들의 언어 행태는 유사(類似) 익명성을 가진다. 온라인상의 음란·욕설은 구술문화가 문자에 스며들면서 ‘비이성적 문자’를 만든 것이고, 114 문의전화는 사이버적 특질이 언어에 반영된 경우다.”

▼114 안내원은 당신을 안다▼

114 안내원 체험을 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114 안내원들이 전화번호 안내를 위해 늘 들여다보는 컴퓨터 단말기에 전화번호 문의고객이 사용하는 전화의 가입자 정보, 즉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매번 화면에 뜨는 것이다. 이 정보는 KOIS와 KOID에 전화번호안내업무 등을 위탁하고 있는 KT에 3개월간 보존된다.

KOIS 이선근 경영지원실장은 “전화요금 과금의 필요성과 정확한 안내 서비스를 위해 문의자 정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KT 홍보실 성원제 과장은 “전화가입 신청서에 고객정보를 KT가 제3자에게 제공하는데 동의한다는 구절이 있다”고 ※본인은 위 신청 시에 게재한 정보를 귀사가 수집함을 동의하며, 보다 나은 고객 서비스 제공을 위해 귀사가 활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데 동의합니다’라는 문구를 제시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법조계 인사들의 견해는 달랐다. “가입자 정보를 안내원에게 노출시키는 번호 안내 시스템이 현행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편리한 114도 데이터베일런스(Dataveillance), 즉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감시체제의 말단도구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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