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단골 盧대통령부탁 거절 삼계탕집 주인 박금남씨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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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옹고집으로 남이 흉내내려야 낼 수 없는 맛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삼계탕집 ‘토속촌’의 주인 박금남씨. -김동주기자
20년 옹고집으로 남이 흉내내려야 낼 수 없는 맛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삼계탕집 ‘토속촌’의 주인 박금남씨. -김동주기자
“대한민국에 딱 하나밖에 없는 삼계탕 집, 그게 우리 경영철학이거든요.”

최근 단골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부탁에도 요리 비법을 가르쳐줄 수 없다고 거절해 화제가 된 서울 종로구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의 주인 박금남(朴金南·51·여)씨. 그는 9일 인터뷰 약속을 하고 찾아간 기자에게 한동안 청와대 이야기는 빼야 한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20년을 지켜온 경영철학을 묻는 것이라는 말에 웃음을 띠며 말문을 열었다.

“안 가르쳐 주겠다는 게 아니고 가르쳐 줘도 어차피 (똑같이) 못 만든다는 뜻이었어요. 20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봤지만 제 맛을 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박씨는 몇 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 출연이 불발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요리솜씨가 없던 주부가 남편에게 맛있는 삼계탕을 대접하고 싶다고 해 재료와 비법을 공들여 가르쳐 줬지만 결국 제 맛을 못내 방송이 취소됐다는 것.

“여동생에게도 여러 번 비법을 가르쳐 줬지만 결국 포기했는걸요. 어떤 삼계탕 집에선 주방에서 저를 돕던 직원까지 뽑아갔지만 얼마 못가 문을 닫더라고요.”

박씨가 한약방을 하던 남편과 함께 ‘토속촌’의 문을 연 것은 1983년. 제대로 된 삼계탕을 만들어 보자며 온갖 재료를 넣고 200여 마리나 되는 닭을 잡은 끝에 ‘이 맛’이라는 자신감을 얻고 나서였다고 한다.

50일 이상 키운 전용 닭에, 인삼과 찹쌀도 위탁 농장에서 재배한 것만을 고집한다. 토종밤 호두 율무 호박씨 들깨 검정깨 잣 등의 독특한 재료들로 국물을 따로 만든 뒤 뚝배기에 닭을 넣고 다시 40∼50분을 끓여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를 섞을 때 비율과 닭을 넣는 타이밍, 불의 세기 등이라는 것이 박씨의 설명.

이렇게 만들어진 ‘토속촌’ 삼계탕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유명해졌다. 한번 맛을 본 일본 관광객들의 입소문으로 지금은 관광코스가 됐을 정도. 언론사에서 복날 풍경을 찍는 단골장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비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몰려들고 체인점을 내자는 유혹도 많았지만 ‘맛의 희소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 물리쳤다고 했다.

박씨는 10여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온 노 대통령을 청와대 입성 후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 불경기는 불경기인 것 같아요. 기사에 나가 소문이 났을 법한데도 손님은 예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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