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모발 이식수술 '맨머리' 탈출 마라토너 이봉주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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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이’ 이봉주(33·삼성전자)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맨머리가 듬성듬성 드러나 땀이 바로 얼굴로 흘러내린다. 그 땀이 눈 속으로 파고들면 눈까지 따가워 가뜩이나 힘든 달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동안 이봉주가 달릴 때마다 이마에 태극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거나 고글형 선글라스를 쓴 것은 그 때문. 98년 쌍꺼풀 수술을 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제 이봉주가 달리면서 땀 닦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9일 저녁 CNP차앤박 모발이식센터에서 휑하던 정수리 부분에 2004가닥의 머리카락을 심었기 때문이다.

굳이 2004가닥을 심은 것은 2004아테네올림픽을 염두에 둔 것. 내년 올림픽에서 반드시 월계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머리카락을 심었으니 무더운 8월에 열리는 올림픽에서도 더 이상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워지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수술을 집도한 황성주 박사는 “이봉주는 머리 앞부분 숱이 많이 줄었고 탈모 증상이 정수리까지 확대돼 머리 뒷부분 모근을 채취해 옮겨 심었다”고 말했다. 황 박사는 이봉주의 열혈 팬으로 이번 수술도 그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 수술비는 무료.

정수리 부분에 2004가닥의 머리카락을 심은 이봉주가 11일 올림픽공원에서 80일된 아들 우석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김동주기자

일단 심은 머리카락은 한 달 뒤 다 빠지고 그 자리에 석 달 뒤부터 새로운 머리가 자라 내년 6월쯤이면 이봉주의 앞머리에 새카만 머리카락이 가득할 듯. 황 박사는 “이봉주는 다른 사람에 비해 두상이 작아 2004가닥을 심었어도 2600가닥 정도를 심은 듯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을 할 경우 일반인의 심장 박동수는 분당 90∼110회(보통 땐 70∼85회). 그러나 이봉주는 수술 내내 분당 52회를 기록해 수술진을 놀라게 했다. 마라토너다운 철의 심장을 과시한 것. 이봉주는 “수술 다음날인 10일 평소대로 훈련하며 땀을 흘렸지만 머리카락이 한 올도 빠지지 않았다”며 흐뭇해했다.

휴일인 11일 이봉주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겸 모처럼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사람들이 그를 몰라볼 리 없다. 처음엔 달라진 모습에 긴가민가하다가 “머리카락 심었네요” 하며 인사를 건네는 팬이 많았다. 이봉주는 “머리카락 심은 모습을 거울로 보니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요즘 옹알이가 한창인 8개월 된 아들 우석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 남은 소망은 내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도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봉주씨 머리의 부기가 아직 안 빠져 옛날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맨머리보다는 머리카락이 수북한 게 좋다”고 말했다. “가장 큰 소망은 봉주씨가 건강하게 오래도록 뛰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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