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 입력 2003년 4월 25일 17시 36분


반다나 시바는 미국 타임지 선정 ‘환경 영웅 5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유전자변형 작물과 식품에 반대하고 전통 농작물 재배법을 살린 유기농법을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반다나 시바는 미국 타임지 선정 ‘환경 영웅 5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유전자변형 작물과 식품에 반대하고 전통 농작물 재배법을 살린 유기농법을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반다나 시바 지음 류지한 옮김/206쪽 9000원 이율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1만가지의 밀 품종이 재배됐지만 1970년대까지 1000가지 품종으로 줄어들었다. 멕시코의 다양한 옥수수 품종 가운데 지금은 단지 20%만이 살아남았다. 한때 미국에서는 7000가지 이상의 사과 품종이 재배됐으나 지금은 6000가지 이상의 품종이 멸종됐다.

종자는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자원이자 농민들이 수천년 동안 발전시키고 개량하고 이용해온 귀중한 자연의 선물이다. 이처럼 소중한 종자가 급속한 속도로 소멸되고 있다. 무엇이 생명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원인으로 단일 재배를 바탕으로 한 산업형 농업과 다국적기업의 종자산업 독점을 지목한다. 종자와 작물은 기업의 재산이나 발명품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지적재산권과 특허라는 명목 아래 생명체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기업들의 행위는 자연의 수확을 약탈하는 ‘생명해적행위(Biopiracy)’라는 것.

이 같은 주장을 펼친 반다나 시바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환경사상가이자 여성과 자연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스트. 이 책에서 그는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약탈을 자행하는 반생태학적 산업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세계화’가 ‘자유무역’이 아니라,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식량권과 생명권을 빼앗는 ‘강제된 무역’을 제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의 경우 식량 재배를 그만두고 환금작물을 수출하고, 대신 농산물을 사가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

이 책에서는 녹색혁명의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기적의 품종이 많은 수확을 가져와 기근을 방지했다’는 주장도 농작물 전체 수확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기르는 어업’도 마찬가지다. 산업적 어업과 양식은 거기서 생산하는 것보다 많은 자원을 소모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격’이라는 것.

또 생명공학의 위험성 및 비도덕성과 관련,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끼어들어 제멋대로 흩트려 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현 시대를 ‘식량 전체주의(food totalitarianism)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식량 민주주의(food democracy)’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식량사슬 전체를 통제하는 소수 기업의 무책임한 권력을 제어하고 식량과 안전, 문화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콩의 위험성 등 일부 대목에서 극단적 주장을 제기해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종도 다른 종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며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개개의 동물을 그 나름의 수단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세계로 생각한다. 모든 피조물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그 하나하나는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모순 없이 생명의 순환을 새롭게 한다.” (괴테)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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