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롤랑 바르트에 바치는 송가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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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R/B/쇠이유-퐁피두 센터-IMEC 제작, 2002년

파리의 퐁피두 문화센터에서는 3월 10일까지 흥미로운 전시회가 하나 열리고 있다. 50년대초부터 70년대말까지 한 세대를 풍미하고 1980년에 훌쩍 세상을 떠난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첫 회고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전시회를 보러 가기 전, 필자는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사진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비평 활동을 해왔고 정치 사회 분야에까지 그 폭을 넓혔던 ‘바르트의 다성(多聲)적 모습’이 제한된 전시 공간 내에서 어떻게 재현됐을지 무척 궁금했다.

바르트의 생애는 시대와 주제에 따라 11단계의 여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시공간마다 텍스트와 오브제가 함께 전시돼, 관람객이 그의 작품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엄청난 양의 자필(혹은 타자) 원고, 분류 카드, 각종 메모와 서간들은 단순히 ‘읽혀지는(lisible) 텍스트’에 머물지 않았다. 그림 사진 영상자료 등 ‘보여질 수 있는(visible) 시각자료’와 어울려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전의 바르트에게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부각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전시물들은 모두 바르트의 ‘글쓰기’를 촉발시킨 재료들이다. ‘신화’(1957)에서 분석 대상이 되었던 50년대 오브제들, 바르트식 구조주의 개념을 시각화한 몬드리안 류의 그림과 바르트가 직접 그린 데생들(1970∼1978), ‘기호의 제국’(1970)을 잉태시킨 일본 여행자료….

무엇보다 바르트를 잘 드러내는 ‘행복의 공간’은 ‘읽기, 쓰기, 그리기’가 행해지던 그의 작업실이 아닐까. 이 전시공간 내에는 바르트가 즐겨 읽던 작가들인 미실레, 지드, 발자크, 사드, 루소, 톨스토이 등의 책들로 그의 ‘서가’가 재현되었다. ‘개인 서가’는 작가에게 ‘얼굴’과 같다는 뜻에서일까. 라푸자드가 그린 바르트 초상화(1965)도 한쪽 귀퉁이에 보인다.

마지막 전시실의 이름은 ‘비타 노바(Vita Nova.새 삶)’. 바르트가 죽기 직전 구상했던 소설의 제목이다. 이 곳은 죽음의 기억을 은닉하고 있는 ‘사진의 방’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과거의 존재 증명인 동시에 현재의 부재 증명인 바르트의 사진들이 ‘풍크툼(Punctum)’의 바늘이 되어 우리를 아프게 찔러대는 곳이다. 바르트의 마지막 저작인 ‘밝은 방’(1980)은 ‘사진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 사랑과 죽음에 관한 긴 명상에 가깝다’고 말한 한 평론가의 말이 불현듯 가슴에 와 닿는다.

전시회를 직접 보지 못하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서는 ‘Roland Barthes R/B(Seuil-Centre Pompidou-IMEC, 2002)’를 권하고 싶다. 바르트 연구 전문가들이 쓴 25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어, 단순한 전시회 카탈로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특히 바르트와 그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독자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퐁피두 문화센터 사이트(www.centrepompidou.fr)에도 이번 전시회가 소개되고 있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소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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