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성인나이트의 모든 것

  • 입력 2003년 2월 6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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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은밀한 놀이공간’으로 성업 중인 서울의 성인나이트클럽들. ‘카바레’로 명성을 날렸던 업소 중 일부도 최근 ‘성인나이트클럽’이란 간판을 새롭게 내걸고 과거의 ‘질펀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들 업소는 절제와 절차를 중시하는 ‘사교적 부킹 문화’를 표방한다. 여기에는 최근까지 화제의 중심에 섰던 서울 강남의 성인나이트클럽 ‘돈텔마마’의 파급효과가 컸다. 10, 20대가 배타적으로 즐기는 디스코텍과 달리 성인나이트클럽에서는 ‘세대간 통합’이 이뤄진다.

본보 정양환 박주일 수습기자 등과 함께 손님이 되어 서울 영등포 장한평 상봉동 광장동 상계동 등지의 성인나이트클럽을 지난해 12월 31일, 1월 3, 10, 13, 14, 15일 밀착취재했다. △총 30여 회의 부킹(남녀간 짝을 지어주는 행위)을 통해 만난 여성 50여 명의 행동거지에 대한 관찰 △그 중 인근 포장마차나 노래방으로 함께 ‘2차’를 간 18명의 진술 △웨이터 20여 명의 진술 △4년간 주 1회 이상 성인나이트클럽을 찾은 남자 K씨(32·자영업)와 3년간 평균 주 0.5회 업소를 찾은 남자 S씨(36·회사원) 등의 진술 △기자의 관찰내용 중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종합했다. 또 10년 경력의 웨이터 W씨(장한평 한 업소)와 7년 경력의 D씨, 3년 경력의 M씨(연신내 한 업소)에게 최종 사실확인을 거쳤다.》

● 30대 미시를 잡아라

일부 업소는 ‘중년 전용’을 표방하며 출입구에 ‘30세 이하는 입장하지 못한다’는 경고 문구를 내걸지만, 10대 후반∼50대 초반의 폭넓은 연령대가 대부분 통제 없이 드나든다.

업소 성공의 열쇠는 30대 기혼여성, 이른바 미시들이 쥐고 있다. ‘30대 미시들이 몰린다’고 소문나면 영업은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30대 미시’는 △새침하지 않고 원숙한 동시에 부킹 파트너에게 매달리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도가 있고 △부킹 대상으로 ±10세까지 무난하며 △경제력도 갖춘 ‘삼위일체’의 존재로 남자들에게 여겨진다.

반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여성은 △남자와 짝을 맞춰 와서 부킹에 무관심하고 △기본안주만 주문해 구매력이 떨어지며 △그 싱싱한 젊음으로 40대 손님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업소에 ‘애들 드나드는 곳’이라는 불명예스러우면서도 치명적인 딱지를 붙게 만든다. 이들은 부킹해도 신체 접촉이 절제된 깔끔한 춤을 고집하다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고양이처럼 사라져 중년 남성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30대 미시’ 유치 여부는 교통여건 등 지리적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 20∼30평대 아파트 단지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자리잡은 업소들은 상대적으로 주부 등 30대 여성의 발길이 잦다. 서울의 경우 △천호대교를 끼고 있어 강남북에서의 유입이 모두 원활한 광진구 광장동(H업소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강북지역의 노원구 도봉구와 함께 경기 구리 하남시에서의 유입이 쉬운 중랑구 상봉동 상봉터미널 일대(H업소 등)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 도봉구 창동, 경기 의정부시에서의 접근이 쉬운 상계동(W업소 등) 등 사통팔달(四通八達) 지역 업소들이 그 예. 일단 30대 여성을 유치하면 모든 지역, 모든 연령대의 남자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한편 영등포구 일대, 동대문구 장한평 일대 등 초기에 개발된 지역과 서북부 연신내 등 도심에서 지리적으로 다소 격리된 지역 업소에는 10∼50대 남녀가 폭넓게 드나든다. 이들은 해당 지역 내에 집이나 직장을 가진 이들로, 업소를 ‘날(日) 잡아 벼르고’ 찾기보다는 ‘술 마시다가 춤이나 부킹이 생각나서’ 들르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은 곱창구이집, 돼지갈비집, 해장국집, 뼈다귀감자탕집, 생맥주집, 실내포장마차, 소주방, 노래방, 장급 여관, 단란주점, 비즈니스클럽, 안마시술소 등 ‘성인오락용 인프라’가 단계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충실하게 형성돼 도심 등 타지역으로 굳이 옮겨갈 필요가 없는 ‘원스톱 성인구역’이다. 최근 영등포의 한 업소가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기존의 단층을 2개 층으로 개조, 최고급 인테리어를 갖추며 레너베이션을 감행한 것은 이런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투자다. 이 업소에서 지난해 12월 31일 만나 인근 감자탕 집까지 함께 간 20대 초반 여성은 “과거엔 분위기가 ‘구려’ 이런 곳에 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장도 잘 돼 있고 40,50대 아저씨들이 추근덕거리지도 않아 자주 찾는다”며 “부킹을 해도 2,3년 전까진 나를 ‘단란주점 아가씨’ 취급하는 아저씨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도 없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웨이터에게 눈짓만 보내면 10초 내에 시정된다”고 했다.

과거 ‘카바레’ 전성기 시절의 전통과 DNA가 뿌리깊게 이어져 오고 있는 광진구 광장동 일대 일부 업소에는 별도 지불하면 남자 손님과 절도 있는 사교댄스를 전문적으로 추어주는 중년 여성 무희들도 있다.

● 손님의 정체

남녀 불문하고 손님의 50%는 옷에서 돼지갈비나 막창구이 냄새를 풍기지만 이것이 비례(非禮)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꽃미남과 짙은 쌍꺼풀의 남자는 이곳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부담스러워하기 때문. △턱이 각지고 얼굴이 약간 네모나며 코가 묵직한 인상과 △키 크고 마르고 쌍꺼풀 없이 안경을 낀 채 넥타이를 맨 회사원 인상(영화배우 한석규 스타일) 등 2개 스타일이 각광받는다. 이들 인상은 상대에게 깊은 신뢰감을 형성한다고 한다. 많은 여성은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가정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어 지속적 관계를 맺어도 뒤탈이 없는지를 면밀히 살핀다. 남성에게 명함을 요구하는 여성도 많다.

성인나이트클럽을 주름잡는 옷 색상은 블랙이다. 블랙 재킷 안에 노타이 블랙 실크 셔츠를 입는 남자와 무릎까지 트인 블랙 롱스커트 차림의 여자가 감각 있게 여겨진다. 접지 않고 목 중간 높이까지 올라오는 모직 또는 모직 폴리에스테르 혼방의 검은색 폴라티(반짝거리는 금속 징이 목 부위에 박혀 있으면 금상첨화다)도 ‘잘 나가는’ 복장이다. 프리랜서인 척 하려고 면 ‘배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는 남성도 있으나 여성들은 무능력자로 여긴다.

업소를 찾는 여성들이 모두 ‘순수한’ 손님은 아니다. 다음 4개 부류는 남자들이 유의해야 할 대상이라고 웨이터들은 귀띔했다.

①‘꾼’〓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주 2,3회 업소를 찾는다. 왼쪽 가슴에 커다란 큐빅 또는 금속성 브로치를 달거나 반짝이는 금속 체인 허리띠를 느슨하게 둘러 ‘끼’가 있음을 시사한다. 부킹시 남자를 가리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초면에 팔짱을 끼고 블루스를 춰 분위기를 띄운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테이블의 술값을 남자들에게 ‘엎고’(‘대신 계산하도록 한다’는 뜻의 업계 용어) △“2차 가자”며 유혹, 노래방이나 포장마차에 가서 즐긴 후 남자의 귀에 대고 “내일 아들이 유치원 소풍을 가는데 김밥을 싸줘야 한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진다.

②‘죽순이’〓20대 초반처럼 보이는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동일 업소에 주 5,6회 ‘출근’한다. 대부분 자신을 “인근 중소기업체에 다니는 직원”이라고 소개한다. 이들이 입장하면 웨이터는 알아서 기본(맥주 2명+과일)만 차려준다. 하룻밤에 7,8번 부킹하면서 동맥경화 없는 활력있는 부킹 분위기를 업소에 제공한다. 이들은 부킹 합석 후 양주를 주문해 업소 매상을 올려준다. 업소는 술값을 할인해주거나 받지 않는 방법으로 공생(共生)한다. 이들은 ‘공짜로 많이 노는 것’이 목적이므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도 다시 테이블을 옮긴다.

③‘간첩’〓20대 초반으로 비밀리에 업소가 고용했다. 극소수지만 손님을 가장해 부킹 횟수를 늘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외모는 떨어지나 미니스커트, 노란 머리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어 첫 눈에 ‘직업 여성’이란 느낌을 주지만 당사자들은 “대학 졸업 후 집에서 신부수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부킹이 순조롭지 않아 짜증내거나 행패 부리는 남자 손님의 테이블에 전격 투입된다.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하는 것. 이들은 신체접촉이나 블루스를 허용하지 않는다. 웨이터들이 이들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부킹을 강요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④‘원정대’〓인근 단란주점 직원들로 남자 손님을 잡기 위해 위장 침투한다. 연령대나 차림은 ③과 흡사하나, 신체접촉과 블루스에 적극적이다. 특정 단란주점 이름을 대면서 “싸고 끝내준다고 소문났다. 2차 가자”며 유혹, 자신이 속한 업소로 데려가 손님을 가장해 매상을 올린다.

업소를 찾는 여성 그룹은 계모임, 동창모임, 동호회 모임, 직장모임, 아파트 같은 동 주부 모임 등 그 성격이 다양하지만 즐겨 찾는 시간대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30, 40대는 오후 9∼12시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은 자정∼오전 2시에 몰린다. 30, 40대는 부킹으로 모종의 인연을 만들어 인근 주점이나 노래방, 숙박업소로 점증(漸增)하는 단계를 밟으려는데 반해 10, 20대는 춤으로 ‘마무리’하며 취기를 해소하는 역(逆)경로를 밟기 때문. 황금시간대인 오후 11시∼오전 1시에 부킹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며, 오전 2시 이후는 파장 분위기로 바뀐다.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들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남자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일부 업소에는 5, 6세 딸 아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손님도 눈에 띈다. 손님이 가장 몰리는 날은 금 토요일이며, 가장 없는 날은 ‘주말을 대비해 심신을 가다듬는’ 목요일이다. 연중으론 크리스마스가 속한 연말이 대목. 작심삼일이지만 일부 주부들이 ‘새롭게 살아보려’ 결심하는 신년 초에는 반짝 불황을 겪는다고 웨이터들은 전했다.

● 성인나이트클럽의 꽃: 부킹

부킹은 성인나이트클럽의 존재 이유다. 웨이터가 여성 한 명의 손목을 잡고 남자들이 자리잡은 테이블로 안내하는 방식. 이 ‘전초병’의 탐색 결과 남자들이 믿을만하고 취향에 맞을 경우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여성 일행을 테이블로 불러들임으로써 부킹이 이뤄진다.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전초병’은 따라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바로 자리를 뜬다. 부킹 성공 여부는 ‘전초병’이 테이블에 처음 앉는 순간부터 30초∼1분에 판가름난다. 남자들은 이 짧은 순간에 자신의 장기와 상품성을 선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든가, 과묵한 모습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잡든가, (노래방 기계가 설치된 룸에 자리잡은 남자들의 경우) 일행 중 가장 노래를 잘하는 남자가 자신의 대표곡을 부른다.

‘전초병’은 “우리 오늘 한번 재미있게 놀아봐요. 친구 데려올게요”하며 일어선다. ‘초보’ 남성들은 목말라하며 그녀를 기다리지만 십중팔구 함흥차사다. 이는 ‘낙찰’이 아닌 ‘유찰’를 표시하는 여성들의 매너있는 관용화법일 뿐이다. “친구 불러오겠다” 외에 “화장실 다녀오겠다” “전화하고 오겠다” 등도 같은 뜻이다. 이 경우 남자들은 눈치를 채고 “아아, 네. 잘 다녀오세요. 빨리 오셔야 해요” 하며 떠나보내는 것이 센스 있는 행동이다.

남자들이 마음에 들면 ‘전초병’은 절대로 테이블을 떠나는 법이 없다. 일행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손을 흔들며 건너오라고 손짓하거나, 웨이터를 불러 “친구들을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술이나 안주를 더 주문한다.

초면에 남자는 여자를 ‘자기’로, 여자는 남자를 ‘오빠’로 부르는 것이 연상연하를 막론하고 이곳에서 통하는 적절한 호칭이다. 일부 남성은 30대 중후반 여성에게 ‘아가씨’라는 작위적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나 되레 농락행위로 간주된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아저씨’란 호칭을 쓰는 것도 비숙녀적이다. 남자가 “누구랑 왔어요?”라고 첫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이스브레이킹(초면의 어색함을 푸는 것)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무난한 질문이다. 반면 “여기 왜 왔냐” “결혼했냐” “이런데 자주 오냐”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냐” 등의 질문은 최악에 속한다.

일단 부킹에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유치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나이도 어려 뵈는데 이런데 와도 돼?”(30대 중반 여성에게 30대 중반 남성이) “내가 몇 살로 보이는데? 깔깔깔.”(여성) “아아, 아니. 그럼 서른이 넘었단 말이야?”(남성)

여성의 상투적인 거짓말은 다음 2개가 대표적이라고 베테랑 남자손님들은 밝혔다. ①“여기 온 건 이번이 두 번째예요. 호호호”(‘첫 번째’라고 하기엔 속 보이므로) ②“한잔만 더 마시면 쓰러져 그대로 잠들지도 몰라요. 그러면 창피하잖아요?”(술을 더 권하게 하는 등 도전욕을 부채질하려는 속셈).

웨이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여성 테이블로 향하는 남성들의 부킹 성공률은 10% 미만. 스테이지에서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눈이 맞아 연결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느린 블루스곡으로 전환되는 순간 스테이지에서 점찍어 놨던 여성에게 “한 곡 추실까요”하고 손을 뻗어도 성사율은 10%를 밑돈다. 여성들은 우발적 인연을 즐기기보다는 부킹이라는 명예롭고 검증된 절차와 교양을 우선시한다.

테이블 60개 규모 업소의 경우 춤만 추러오거나, 남자와 짝을 맞춰오거나, 지나치게 연로한 여성을 제외하면 사실상 10∼15개 테이블에 앉은 30∼40명의 여성을 두고 40∼50개 테이블의 남성(120∼150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부킹시 남자는 상대가 거슬려도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의 ‘꿈’과 달리 부킹이 성사된다 한들 그것으로 ‘하룻밤’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장한평 한 업소 웨이터의 표현을 옮기면 ‘첫날 만나 마침표를 찍는’ 경우는 부킹이 성사되는 모든 케이스의 5%가 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이곳의 인연을 시작으로 2,3회 더 만나 남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성격과 행동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끝내 부킹에 실패한 남자들은 무력감과 아쉬움을 가슴에 묻은 채 인근의 저렴한 단란주점이나 퇴폐 이발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 웨이터의 등급

부킹이 잇따라 실패하면 남자손님들은 담당 웨이터에게 여유(“알아서 잘 해줘”)→짜증(“괜찮은 애들로 해달라니깐”)→분노(“아주 젊은애들로 해달라니까”)→초조(“여자면 되니까 빨리 해줘”)→애원(“아무나 데려와 줘”)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표출한다. 웨이터는 다음과 같은 수사로 손님을 다독거리지만 모두 거짓말이라고 웨이터들 스스로 인정했다. △“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제 마음이 더 탑니다” △“특별히 손님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할머니라도 괜찮으시다면 부를 수 있지만 욕 하실까봐….”

영등포 일부 업소에서는 이례적으로 20∼40대 초반 여성 웨이터가 있어 부킹을 해준다. 남자 웨이터에 비해 여자손님의 손목을 잡아끌며 독려하기가 자연스럽고, 부킹에 실패한 남자손님들이 신경질을 훨씬 덜 내기 때문이다.

팁을 요구하는 웨이터는 없다. 영등포 한 업소 화장실에는 ‘팁을 요구하는 웨이터를 적발해 사장에게 보고하면 마티즈 승용차를 제공합니다. 단, 부가세 별도’라는 문구도 붙어 있다. 그러나 웨이터 주머니에 1만원권 한 장을 꽂아주면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요구하진 않지만 받지도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웨이터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호객하는 웨이터→화장실 앞에서 문을 여닫아 주는 웨이터→테이블 사이에 부동 자세로 서서 지나가는 손님마다 “즐거운 밤 되십시오”하며 인사하는 웨이터→테이블을 전전하며 부킹 중계에 나서는 웨이터→룸 앞을 지키며 룸에 든 손님의 주문과 요구를 접수하는 웨이터 등 단계로 등급이 높아진다. 단 매출과 팁 수입이 많은 룸 관리는 테이블 담당 웨이터들과 정기적으로 로테이션한다. 웨이터들간 분쟁을 막기 위해서다. 장내 각 모서리에 부동 자세로 서 있는 웨이터들은 특정 테이블에서 남자들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최단 거리로 달려가 제압, 곧바로 화장실로 데려가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10초 대기조’다.

업소 성격에 따라 웨이터도 다르다. ‘영업 마인드’가 강한 업소의 웨이터는 “기본(대개 맥주 3병+과일)은 무슨 기본입니까. 양주 한 병은 시켜주셔야…. 부킹은 걱정 마십시오. 피곤할 정도로 해드릴 테니…”하면서 매상을 올리려 노력한다. 반면 ‘조폭(조직폭력배) 마인드’가 강한 업소는 “기본으로…”라는 손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하며 더 이상 권하는 법이 없다. ‘깍두기’ 머리에 늘 각도 90도의 인사로 손님을 부담스럽게 한다. 화장실도 다르다. ‘영업 마인드’ 업소는 화장실 벽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뿌린 만큼 거둔다’ 등 격언이나 ‘부킹 10계명’ 등 정보성 문구가 눈길을 끈다. ‘조폭 마인드’ 업소에는 ‘귀중품을 카운터에 맡겨놓지 않으면 분실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상법 153조’ 등 대중목욕탕에서나 볼 법한 경고성 문구가 붙어있다. 또 화장실 부스 안에 2,3명의 웨이터들이 한꺼번에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며 사장과 업소에 대한 흉을 보고 인생을 한탄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조폭 마인드’ 업소는 매출확대 및 수익창출이라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조폭 아지트’라는 전략적 목적으로 운용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

혼잡한 장내에서 웨이터들은 무선 이어폰과 마이크를 통해 의사소통하며 비상시에는 상대 웨이터의 몸에 레이저 포인터를 쏘는 방법으로 서로를 호출한다.

업소 성격을 막론하고 룸의 공통된 특징은 세워놓는 옷걸이가 없다는 것. 한 웨이터는 “남자 손님들이 옷걸이를 휘두르며 싸워 아예 없애버렸다”고 했다.

● 남녀 동선(動線)이 다르다

10,20대 중심 디스코텍에선 하반신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상반신을 부드럽고 느리게 흔들며 주위를 관망하는 ‘내성적 댄스’가 중심이라면, 성인나이트클럽 남자손님들은 최대한 많은 공간을 확보하고 상 하반신을 모두 격렬하게 움직이는 ‘외향적 댄스’를 의도적으로 춘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여성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세일즈성 댄스’라고 영등포 한 업소의 여성 웨이터가 말했다. 짝 없는 남성들이 스테이지 끝단에 늘어서서 스테이지가 아닌 테이블 쪽을 향하며 춤을 추는 것도 자신을 적극적으로 ‘팔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외기러기’ 남자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또는 스테이지 주위에서 팔짱을 낀 채 장사진을 치고 한(恨)서린 눈빛으로 스테이지의 여성들을 주시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화장실을 가는데도 남녀에 따라 서로 다른 동선(動線)을 그린다는 사실이 관찰결과 공통적으로 확인됐다. 여성은 테이블에서 화장실로 가고 오는 최단 거리를 선택함에 반해 남성은 대단히 비경제적인 우회로를 선택한다. 테이블 곳곳에 어떤 여성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동시에 자신을 그들에게 최대한 노출하려는 목적 때문으로 추정된다.

번잡한 무대 한 가운데서 일군의 여성들 사이로 끼여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남자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며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화장실로 가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일부 남성들은 80년대∼90년대초 스타일의 토끼춤을 격렬하게 추는 것이 남성적 매력과 젊음을 과시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여성들은 침착하고 사려 깊은 남자의 몸동작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일찌감치 짝을 찾은 남녀는 스테이지의 가장 안쪽(무대와 인접한 지점·그림)을 확보하고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춤을 즐긴다.

블루스 음악으로는 가요가 절대적으로 선호된다. 80,90년대에 심금을 울렸던 가수 ‘푸른하늘’의 ‘눈물나는 날에는’,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등을 남녀가 눈 감고 상념에 잠긴 채 따라 부르며 블루스를 추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10, 20대 중심 디스코텍이 블루스용으로 1∼2곡(5∼7분)을 내보내는데 반해 성인나이트클럽은 4∼5곡(10∼15분)을 내보내며 블루스 타임을 길게 유지한다. 댄스 타임이 끝나고 블루스 타임이 시작되며 긴장이 이완되는 순간 업소의 ‘꽃’인 부킹이 동시다발적으로 시도되기 때문이다.

모던토킹의 ‘유아마이하트 유아마이소울’처럼 80년대 대표 팝송과 가수 인순이의 노래 사이사이 가수 클론의 ‘월드컵송’과 같은 비교적 최근 댄스곡도 흐른다. 연말에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까치까치 설날’ 동요가 빠른 비트로 흘러나와 장내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다. 가수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는 댄스 타임을 마무리하고 손님 간 일체감을 북돋기 위해 사용하는 보증수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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