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自 薦 (자천)

  • 입력 2003년 1월 19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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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 薦(자천)

薦-천거할 천 謙-겸손할 겸 客-손 객

賢-어질 현 囊-주머니 낭 錐-송곳 추

지금이야 자신을 내세우고 힘껏 알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본디 謙讓(겸양)을 미덕으로 여겼던 옛날 우리나 중국사회에서 바람직한 處身(처신)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 남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거나 推薦(추천)을 받게 되면 일단은 ‘遜色’(손색)을 보이는 것이 道理(도리)였다. 그렇지 않고 ‘나 잘났소!’ 한다거나 ‘내가 아니면....’하고 나섰다가는 지탄을 받게 되고 심하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수많은 說客(세객)들이 그러하였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내가 하겠소!’하고 당당히 자신을 내세웠던 毛遂(모수)의 경우가 그러했다.

戰國時代 趙(조)나라의 公子 平原君(평원군·B.C?∼B.C 151)이라면 齊(제)의 孟嘗君(맹상군)과 함께 3000명의 食客(식객)을 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秦(진)이 도읍을 포위하자 楚(초)에 사람을 보내 援兵(원병)을 청하기로 했다. 그래서 食客 중에서 20명을 선발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한 명을 뽑지 못해 걱정이었다.

그때 스스로 나선자가 毛遂(모수)였다. 自薦한 것이다. 그러나 평소 눈여겨 보지 못했던 食客이라 平原君은 의아했다.

“내 食客이 된 지 몇년이나 되었소?”

“3년입니다.”

“賢者(현자)라면 囊中之錐(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와 같아서 저절로 뚫고 나오는 법인데 그대는 三年이나 되었으면서도….”

“그래서 지금 주머니 속에 넣어주십사 간청하는 것입니다. 만일 일찍 넣어주셨더라면 송곳의 손잡이까지 삐져나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일행에 끼게 되었지만 나머지 19명의 食客은 그를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楚로 가는 도중 토론을 벌여 본 결과 아무도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마침내 그의 송곳이 주머니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楚王은 거드름을 피우면서 平原君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19명의 食客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다들 毛遂를 천거하면서 마지막 설득을 요구했다.

毛遂는 칼을 들고 단상을 뛰듯이 올라가 楚王을 만났다. 깜짝 놀란 楚王이 무례를 질책하자 말했다.

“왕께서는 초나라의 백만대군을 믿고 계시겠지만 저는 지금 왕의 지척에 와 있습니다. 이제 왕의 목숨은 이 손안에 있습니다. 援兵을 보낼 것입니까 아니면….”

마침내 楚王은 援兵을 허락했다. 유명한 毛遂自薦의 고사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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