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방혜자씨 '빛의숨결전' 31일까지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36분


생명의 빛
생명의 빛
서양화가 방혜자씨(65)는 빛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세상에 올 때, 그리고 갈 때 빛으로 왔다가 간다고 생각한다. 암흑 속에서는 만물이 제 모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빛은 만물의 존재 근거이기도 하다. 빛에 대한 갈망은 그녀 삶의 원동력이자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이 빛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림으로써 빛을 표현할 수도 있겠만 그녀가 택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세계’다.

‘생명의 빛’이라 이름 붙여진 작품은 초록색 남색 보라색 벽돌색 노란색들이 각각 자기 색깔을 한껏 드러내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생명의 모양과 종류의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이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그것들이 하나로 어우려져 살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변이다.

그녀의 작품 이야기를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재료다. 작가는 그것을 ‘물성(物性)과의 하나됨’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흡수력이 좋고 표현이 자유로운 한지를 구겨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을 위해 두툼한 천을 사용하고 있다.

‘제오 텍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천은 한지의 맑은 느낌이나 구겨짐에서 보여지던 왕성한 운동감은 덜 하지만 섬유 조직이 세밀하게 서로 엉겨 있어 깊이 있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보존도 쉽다. 작가는 이 섬유의 앞 뒷면에 자연 염료를 묻힌 붓으로 그린다. 때로 돌가루, 황토, 모래같은 재료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작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뭔가를 어떻게 그려야 겠다는 의지를 지우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무욕의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색을 선택하고, 붓질을 해야 자연스러운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손도 작고 얼굴도 작고 목소리도 작은 저 연약한 여인이 펼쳐내는 빛의 세계가 온 우주를 안은 듯 커 보이는 것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눈동자가 맑은 화가 방혜자씨는 “우리 인간 하나하나가 모두 빛”이라며 “붓질 한번 할 때마다 세상에 밝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그린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밝은 빛 에너지를 안고 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31일까지 성곡미술관(02-737-7650)에서 ‘빛의 숨결전’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전시회가 열린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