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종상/문화로 지켜야 할 '독도'

  • 입력 2002년 8월 16일 19시 04분


‘환희와 열락.’ 독도는 이렇게 필자에게 다가왔다. 새벽 안개를 뚫고 느닷없이 물 위에 솟아오른 고래등 그림자. 한 개인가 하는 순간 어느 새 두 개로 갈라서면서 그 사이로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달려든다. 가슴 치는 이 흥분. 걷잡을 수 없는 감격에 미친 듯이 먹을 갈아 화선지에 담아 본다. 우리 땅 독도를 화가로서는 최초로 화폭에 담는다는 이 흥분. 신은 정녕 독도를 끝으로 이 조국 강산을 완성했는가!

정확히 1977년 3월 15일. 바로 그 날, 독도 일출을 목격하며 처음으로 그림에 담고 돌아와 감격에 겨워 썼던 글이다.

필자는 당시 겸재 정선의 진경(眞景) 정신을 이어받고 싶어 전국을 누비며 진경 여행을 다녔다. 그때 심심치 않게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걸 보며 예술작품 속에 독도가 어떻게 그려져 왔는지 궁금했다. 필자는 바로 미술사가 몇 분에게 자문하며 독도 진경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독도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음악 작품을 찾지 못했다. 한국의 화가로서 엄청난 사명감을 느꼈던 필자는 이를 계기로 독도를 찾은 첫 화가가 되었다.

죽어서도 동해를 지키고자 바다 속 대왕암에 묻혀 청룡이 되기를 원했던 신라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생각났다. 통일 위업을 달성한 그가 피로 얼룩진 천하를 동화(同化)가 아닌 화해로 이끌기 위해 쇠로 된 무기를 녹여 호미를 만들고, 대나무로 죽창 대신 피리를 만들게 하니 아들 신문왕에 이르러 문화로 치민(治民)이 아닌 위민(慰民)을 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통치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다. 물론 ‘삼국사기’에도 나오지만 여기서는 ‘괴이(怪異)하여 믿을 수 없다’는 합리주의적 유교사관에 의해 문화적 상상력이 폄훼되고 만다. 이처럼 건조한 사관으로 본다면 신화나 설화는 존재할 수 없고 예술은 난세지교(亂世之巧)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화적 시각을 역사 서술의 살(肉)로 인식하고 아니무스(animus)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애니마(anima)의 상상력으로 ‘독도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필자가 독도와 만파식적의 불가분성을 말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꿈의 상상력을 빌려 설화의 내용을 음미해 보려는 데 있다. 동해에 떠있는 자라머리 섬과 거기서 자라는 신통한 대나무가 음양으로, 혹은 동서로 나뉘고 합쳐져 언어 이전의 소리를 창출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문왕 당시의 해관(海官)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는 그 섬은 보는 각도에 따라 하나였다가 둘도 되고 셋도 되는 천의 얼굴의 섬, 바로 주름진 자라머리로 비유된 독섬이 아니었을까.

독도는 문헌 고증과 역사, 지리에 비중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선사시대부터 한 부족의 모듬살이 영역을 구분짓는 데는 그들의 생활 흔적인 문화유산의 유무가 기준이 된다. 독도에 관한 한 역사학자들이 정치적 논리에 앞서 학문적으로 영토를 지키는 데 골몰하고 있을 때, 문화예술인들은 무얼하고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한때 정치권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독도는 우리 땅’임을 부르짖는 노랫말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온당치 못함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당연한 우리 땅을 되뇌기보다는 진정으로 우리 땅임을 믿거든 그곳에 진작 ‘해돋이 문화’를 만들어 가꾸었어야 했을 터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처음으로 독도를 다녀온 지 25년 만인 지난해에 서울대 박물관 주최로 제1회 ‘역사와 의식, 독도’ 특별전을 가졌다. 9명의 초대작가 중 백남준이 끝내 불참한 채 ‘독도문화운동’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이어 제2회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 특별전을 위해 지난달 말에 미술사가인 이화여대 김홍남 교수와 한국무용가인 서울대 이애주 교수 외에 10명의 초대 작가들과 함께 독도를 다시 다녀왔다.

독도가 거기 있으니 그곳에 가는 것이고, 독도가 우리 산하이니 우리가 그릴 뿐이다. 독도가 가장 먼저 해뜨는 땅이라면 ‘해돋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 만파식적의 이적(異蹟)처럼 좌청룡으로 동해의 지킴이가 돼야 할 것이다. 독도를 지키는 것은 이제 문화예술인의 몫이다. 문화로 지키고 자연보호로 가꿔야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이 설화와 소설로, 시와 그림으로, 노래와 춤으로 우리 가슴에 새겨 실질적 점유권을 누려야 한다. 그곳에 해가 뜨는 한 우리가 뜻을 모아 ‘독도문화재단’을 만들고 해돋는 섬 독도를 영원히 문화로 보듬어야 한다.

이종상 화가·서울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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