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인정신]사리함 제작 28년 최광웅씨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41분


최광웅씨가 경주 작업실에서 현재 제작 중인 불국사 월산스님 사리함을 소개하고 있다.
최광웅씨가 경주 작업실에서 현재 제작 중인
불국사 월산스님 사리함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 사리함(舍利函)을 만드는 일은 고독하다. 사리함은 사찰의 부도(浮屠)나 탑 속에 안치되어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리함 제작은 따라서 자신을 내세우고픈 세속적인 욕망이 있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치열한 예술혼과 신실(愼實)한 불심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28년째 사리함 제작의 외길을 걸어온 경북 경주의 최광웅씨(61·전통금속공예연구소 금오산방 소장). 그가 다른 전통 금속공예품을 제작한 것까지 치면 벌써 32년째다. 국립경주박물관 경내 다보탑 석가탑(복제품) 사리함, 경남 합천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함, 충북 보은 법주사 청동대불 사리함을 비롯해 전남 순천 송광사와 서울 봉은사 사리함 등 전국의 유명 사찰 사리함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지금은 경주 불국사 조실이었던 월산 스님 사리함을 제작 중이다.

사리함은 조각 서예 회화 건축 디자인 그리고 불교적 신심까지 총망라해야 하는 불교공예미술의 총합이자 정점이다. 최씨가 사리함 하나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수개월. 그러나 구상하고 도안하는 과정까치 합하면 1, 2년이 잠깐이다.

최씨는 월산스님 사리함을 만들기 위해 2년전부터 각종 전통 문양과 건축 양식 등 관련 사진과 도면 3000여장을 채록했다. 지금은 전통 건축 모양으로 사리함 구조물을 만들어놓았다. 은판을 말아 붙여 원기둥을 만드는데 용접제를 사용하지 않고 불을 이용해 은과 은이 스스로 붙도록 한다. 고난도의 기술이다. 온도가 높으면 은이 녹고 온도가 낮으면 붙지 않는다. 그 감각은 30여년 연륜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전통 수작업을 고집한다. 그의 세공 기술은 기계보다 더 정교하다. 0.1 ㎜ 두께의 금판을 서로 이어붙이는 일이나,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인 지름 0.3∼0.5㎜의 금구슬을 붙이는 일 등이 그렇다.

최씨는 전통적인 사리함을 만들지만 단순 복제는 아니다. 새로운 창작품이 되도록 노력한다.

“경주 감은사 사리함을 누구든 복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감은사 사리함보다 아름다울 순 없죠. 궁극적으론 20세기 혹은 21세기에 맞는 창조여야 합니다.”

원래 토목을 전공했던 최씨가 전통 금속공예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71년, 30세 때. 금은방하는 친구들의 세공작업을 구경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곤 1973년 천마총 출토 금속유물 복제품을 만드는 친구를 도와주다 아예 직업을 바꾸었다. 이듬해 다보탑 석가탑 사리함을 만들면서 사리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금관이나 금귀고리 등은 만드는 사람이 여럿 있더군요. 그런데 사리함 쪽은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내팽겨쳐진 분야였죠. 누군가 꼭 해야하는데…. 제가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최씨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가난이다.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큰 사찰 10여곳의 사리함을 만들었지만 수익을 남길 만큼 돈을 받은 것은 단 한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유명 사찰은 억대의 제작비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사리함 제작을 하다보면 처음 절에서 책정한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갑니다. 잘 만들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땐 아쉽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부처님 집, 스님 집(사리함) 지어드리고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으면 됐지, 돈은 무슨 돈인가요. 저는 그냥 취해서 집을 짓습니다. 그저 그 뿐입니다. ”

경주〓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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