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배우가 만났을때…이재순-추상미씨 공동기획전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7시 53분


연극을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을 좋아하는 배우가 만났다. 화가 이재순(35)과 배우 추상미(28). 이들이 2월28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떼아뜨르추에서 공동 기획전을 열고 있다. 전시작은 이씨의 작품.

이번 전시는 추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평소에도 그림을 좋아하고 특히 화가들의 전기와 미술사 관련 서적을 즐겨보던 추씨였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이 선생님을 추천 받아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너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화려하고 파격적인 색감은 서양적인데 기법이나 여백은 동양화의 미학이었습니다. 완전 서양화도 아니고 완전 동양화도 아닌,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때가 10월말. 추씨는 곧바로 이씨에게 전시를 제의했다. 카페 겸 갤러리인 떼아뜨르 추에서 이씨 작품을 전시하자는 것이었다. 떼아뜨르추는 추씨가 아버지인 연극배우 고 추송웅씨를 추모하기 위해 올해초 세운 문화공간. 어린 시절부터 추송웅씨의 연기에 감동을 받았던 이씨는 우선 이런 제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전시 장소가 카페라는 점.

“카페라는 말들 듣고 솔직히 좀 그랬습니다. 그런데 추씨를 만나보니 미술에 대한 감각과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마음이 놓였죠.” (이재순)

“우리 화랑은 전시장이 좀 획일적이죠. 그림을 감상하고 느껴야한다는 강박 관념을 심어줍니다. 그냥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추상미)

이씨가 연극을 좋아해서인지 그의 작품엔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이번 전시작은 아프리카 원주민같은 여성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면서 그 화려함 속에 숨겨진 여성의 고독한 내면 심리를 드러낸 작품들. 그림 속의 여성이 마치 연극배우 같다.

이씨는 “여인을 그리면서 여인답지 않게 하려고 했다”면서 “여인의 눈썹이 많이 올라가고 목이 길고 어깨가 처지고, 생소한 항아리 통옷을 등장시킨 것 등등이 연극적 요소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한다.

추씨 역시 미술적인 연기를 꿈꾸고 있다.

“연극이나 영화에선 말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미술은 말 없이 보여주는 것 자체입니다. 말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미술이 더 자유에 가깝다는 말이죠.” (추상미)

남남이었던 이들은 이렇게 만나 뜻을 합했고 이제는 서로의 팬이자 조언자가 됐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그림 그리는 일과 연기하는 일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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