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찬식/문화국가의 꿈

  • 입력 2001년 10월 28일 19시 05분


10월이 국가적으로 정한 ‘문화의 달’이라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먹고살기도 고달픈 판에 문화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나들이를 떠나는 자동차들로 도로가 꽉 막히는 것을 보면 한편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날로 커지고 있음도 실감할 수 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책이 팔리지 않는 시즌이 가을이다.

국내 독서인구가 원래 적기도 하지만 그나마 가을이 되면 쾌청한 날씨 때문에 집에서 책을 읽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 분야 종사자들도 ‘문화의 달’이 되면 오히려 소외감을 더 느낀다고 한다.

문화가 경쟁력을 지니려면 문화가 생활화되어야 한다. 문화 수요층이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문화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계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문화를 즐기는 인구가 빈약하고, 또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점이다. 여가 생활에 대한 욕구가 팽창하고 있지만 정작 문화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여기 통계가 하나 있다. 미국 사람들의 전체 소득 가운데 문화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미국인들의 문화비 지출은 소득의 5.5% 정도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80년대 극심한 불황을 겪었지만 그때도 문화비 비중은 변동이 거의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문화비는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문화비 지출 통계는 경기 침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불황이면 문화비 지출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는 문화비가 전년도에 비해 24%나 줄기도 했다. 미국은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문화와 생활이 유리되어 있다는 얘기다.

백범 김구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문화적으로 뛰어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에도 ‘문화 국가’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치열했던 학술 논쟁은 그 양과 깊이에 있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종묘 같은 옛 건축물의 아름다운 선이나 국악의 감동적인 선율은 선조들의 높은 문화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지배계층의 문화말고도 민중이 즐겼던 문화도 뛰어난 수준이었다. 문화 전통이 단절된 것은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역사적 시련 때문이다.

문화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생활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21세기 들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에게 예술 등 문화 교육을 강화해 일찍부터 문화와 친숙하게 만드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멀지 않았다. 벌써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도 많다. 우리 여가 생활에도 큰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여가 생활이 가난했던 시절의 한풀이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위주였다면 최소한 이제부터는 여기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홍찬식<문화부장>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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