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 ‘사전기획’ 드러나는 진상]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03분


한겨레신문 성한용(成漢鏞) 차장의 저서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를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가 동아일보 등 ‘빅3 신문’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사전에 기획됐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은 여전히 언론사 세무조사의 사전기획설을 부인하고 있다. 성 차장이 밝힌 정권 핵심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풀어야 할 의혹들을 짚어본다.

언론 세무조사 관련 청와대 관계자 발언내용
발언 일시발언자주요 내용
98년 8월청와대 수석비서관(언론 개혁을)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된다. 이런 얘기가 나가면 큰일난다.
98년 11월청와대 수석비서관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조선도 두세 달 내에 그냥 안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 버리겠다.
2000년
3월15일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한 비서관(4·13)총선 이후 뭔가를 해야한다는 데는 실무자들 사이에 이의가 없다. 대통령이 시기를 살펴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2001년 1월청와대 수석비서관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겨레가 줄기차게 요구한 언론개혁을 곧 시작한다. 기사를 미리 쓰지 마라.
2001년 3월정권 실세 인사세무조사는 정권 차원에서 모든 것을 걸고 한다. 국세청 주요 간부들을 미리 다 호남 출신들로 바꿔놓았다.
세무조사 착수 직후로 추정정권의 한 실세정권에 대한 기사를 비판적으로 쓰든 호의적으로 쓰든 신문사 마음대로다. 그 대신 우리는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우리는 더 잃을 것도 없다.

▼98년 중반부터 준비한듯▼

▽언제부터 ‘빅3’를 겨냥했나〓청와대 인사가 처음 ‘언론과의 전쟁’을 언급한 시점은 98년 8월. 당시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이 “좀 지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된다. 이런 얘기가 나가면 큰일난다”고 털어놓았던 것.

이에 앞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98년 7월 한 언론인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언론 스스로 개혁하는지 눈여겨볼 것이다. 안 되면 내년부터는 개혁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부분은 내놓고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발언을 놓고 볼 때 ‘언론사 타격가하기’는 98년 중반 ‘기획’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 세무조사를 위한 국세청 편중인사 의혹〓세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1년 3월 현 정권의 한 실세는 “국세청 주요 간부들을 미리 다 호남 출신들로 바꿔놓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호남 출신들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게 성 차장의 증언이다.

이 같은 발언이 있기 1년9개월 전인 99년 6월 실제로 국세청 요직 중 언론 세무조사를 지휘하는 국세청장, 서울지방청장, 조사국장이 모두 호남 출신으로 교체됐다. 청장은 이건춘(李建春·충남 공주)씨에서 안정남(安正男·전남 영암)씨로, 서울청장은 황재성(黃再性·서울)씨에서 김성호(金成豪·전남 목포·현 조달청장)씨로, 조사국장은 봉태열(奉泰烈·전남 장성)씨에서 손영래(孫永來·전남 보성·현 국세청장)씨로 바뀐 것. 특히 안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조사국을 확대개편하고 조사 실무 요직인 서울청 조사계장 등에도 호남 출신을 앉혔다.

▼“대통령 시기만 살피고 있는듯”▼

▽각본 기획자와 최고사령탑은 누구인가〓성 차장은 현 정권 초기부터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보고서가 청와대에 여러 차례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참모들이 ‘언론개혁’ 필요성을 언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0년 3월 한 청와대 비서관은 “(언론개혁을) 실제로 할지는 대통령만 알고 있다. 대통령이 시기를 살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98년 11월에는 한 수석비서관이 성 차장에게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했다.

그리고 김 대통령이 올 1월 11일 연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역설한 뒤 20여일 만에 언론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한나라당은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고 언급한 수석비서관이 시나리오를 짜고 김 대통령이 총지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성한용기자 “증거 갖고 있다”▼

▽발언 당사자와 진위 여부〓성 차장은 “책에 등장하는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증언은 모두 사실이며 증거도 갖고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성 차장은 발언당사자들을 밝히지 않고 있고 발언 당사자로 의심이 가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책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성 차장이 청와대를 출입할 당시 언론과 빈번히 접촉했던 수석비서관으로는 이강래(李康來) 정무수석, 박지원(朴智元) 공보수석,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 박준영(朴晙瑩) 공보수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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