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복암리 3호분' 주인공-조성배경등 못밝혀

  • 입력 2001년 4월 4일 18시 48분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3호분’은 독특한 고분이다. 사다리 모양에, 한 변의 길이가 약 40m인 이 고분엔 41개의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무덤들이 3층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일종의 아파트형 무덤으로, 이런 특이한 모양은 한반도에서 유일하다.

1996∼98년 발굴 기간 내내 고고학자 고대사학자들을 흥분과 미스터리로 몰아넣었던 이 아파트 고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누가 왜 이렇게 아파트처럼 독특한 무덤을 지었을까?

이 고분을 발굴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그 정체를 추적해 최근 발굴보고서 ‘나주복암리 3호분’을 발간했다. 3년이란 발굴 기간은 국내 고분 발굴 사상 최장.

발굴조사 결과 옹관묘 목관묘 석곽묘 석실묘 석곽옹관묘(석곽 내부에 옹관을 넣은 무덤) 등 영산강 유역에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묘제가 확인됐다. 3층 아파트 맨아래층은 옹관묘가, 가운데층엔 석실묘 옹관묘 석곽묘가, 맨위층엔 석실묘가 배치됐고 3세기에서 7세기까지 400여년에 걸쳐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 토착세력의 옹관묘에서 백제식 석실묘로 변해간 것으로, 토착집단이 백제에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왜 이런 무덤을 만들었는가 하는 점. 발굴에 참여했던 문화재연구소 김낙중 학예연구사(고고학)의 설명. “영산강 유역에선 하나의 무덤에 여러 개의 옹관을 묻는 다장(多葬)의 전통이 있었고, 석실묘를 도입하면서도 그러한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무덤의 주체는 토착집단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사회에서 무덤은 권위와 세력을 상징한다. 커다란 무덤에 한 사람이 매장됨으로써 그 사람의 권위를 과시했던 것이다. 반면 하나의 고분에 여러 사람이 매장된 나주 복암리 3호분의 경우 피장자의 권위가 크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이 고분의 진정한 의미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해석에 어느 정도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이는 토착 마한 집단과 백제 중앙정부의 세력 판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1100쪽에 이르는 엄청난 양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성격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5, 6세기 당시 영산강 유역의 세력관계가 워낙 복잡해 섣불리 판도를 단정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토 유물도 궁금증을 더해 준다. 가장 흥미로운 유물은 규두대도(圭頭大刀·손잡이 끝이 각진 칼)이다. 한반도에선 복암리 3호분에서 출토된 규두대도가 유일한 것이고 일본에선 90여점이 발굴됐다. 이 규두대도가 과연 한반도에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반도로 건너온 것인지 역시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유일무이한 아파트형 고분인 복암리 3호분. 발굴은 끝났으나 그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진정한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지금부터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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