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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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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starts to fall asleep(탐은 잠들기 시작한다)’→‘탐은 가을에 시작한다.’
‘Some of the older kids are loud(나이 많은 아이들 몇몇이 떠든다)’→‘늙은 염소 중 몇 마리는 소리를 지른다.’
‘I like to play the imagine game to pass the time(나는 상상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나는 이미지 게임 시간에 패스하는 놀이를 좋아한다.’
이는 올해 영어 부전공 자격 취득 연수를 받은 서울 시내 중고교 교사들의 영어시험 답안지다. 고교생이면 번역할 수 있는 문장에 대한 오역(誤譯)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older kids'가 '늙은 염소'▼
몇 가지 답안을 더 들춰보면 기가 막힌다.
‘그들은 말하기를 젊은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나쁜 말들에 슬펐고 더 어린 양들에 뜻한다.’
‘나는 그들의 방식으로부터 머무르고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엉터리 번역이지만 이들은 전원 영어교사 자격을 얻어 일부는 일선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나머지 교사들도 자리가 나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다.
▽한심한 수준〓지난해 서울에서 영어 부전공 연수를 받은 중고교 교사는 모두 77명. 이들 가운데 본지가 단독 입수한 37명의 시험 답안지를 보면 이들에게 영어교사 자격을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시험문제는 △짤막한 문장 6개로 이뤄진 영문 한 문단 해석 △2개의 짧은 문장 영작 △영문 한 단락의 주제문을 영어로 쓰기 등 모두 3개. 고교 1학년 영어교과서 1과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만점을 맞은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0점을 맞은 교사는 25명(67.6%)이었다. 해석문제는 전원이 틀렸고 2개의 영작을 제대로 한 교사는 2명(5.4%), 마지막 주제문을 제대로 쓴 교사는 1명뿐이었다.
영작의 경우 ‘무슨 일을 하든 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를 ‘He always to himself best at everything’으로 동사가 없는 문장을 만들거나 ‘그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는 ‘He 잡아당겼다 my 팔을’로 기본 단어도 모르는 답안이 많았다.
▼학점만 채우면 자격 줘▼
▽왜 이 지경인가〓교사는 복수 전공을 해서 원래 전공과 다른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의 복수 전공 기준인 21학점 315시간 이상의 수업만 받으면 누구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 연수 후 시험성적이 평균 60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성적 때문에 탈락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의 영어 연수를 담당한 모 교수는 “교육인적자원부에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교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자격을 주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했다”며 “중학생 영어실력에도 못 미치는 교사들이 어떻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주부 양모씨(40)는 “교련을 가르치는 교사가 영어도 담당한다면 내과전문의한테 산부인과 진료도 함께 맡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면서 “대학서 4년간 영어를 전공한 교사들도 실력이 없다며 아이들이 학원을 찾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저질 교사’ 양산 위기〓농업 기술 상업 교련 한문 독일어 프랑스어 등 수요가 점차 줄어 ‘실직’ 위기에 놓인 교사들이 국어 영어 수학 컴퓨터 등 수요가 많은 과목으로 전공 과목을 바꾸기 위해 국가 예산으로 연수를 받고 있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강화되는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됨에 따라 연수 인원도 늘어 지난해 7047명이 부전공 연수를 받아 자격을 얻었다. 서울의 경우 93년부터 지금까지 부전공 연수를 통해 자격을 얻은 교사가 2992명이며 이중 부전공 과목 교사로 일선 학교에 발령받은 교사는 고교에만 217명이다.
이들이 모두 실력이 없는 저질 교사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격한 시험을 거쳐 자격을 주거나 △전공을 바꿀 때 교사 경력을 인정하는 가산점을 주고 사범대 졸업생과 똑같이 시험을 치르는 등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자질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한문 교사가 국어, 프랑스어 교사가 영어 등 기존 전공과목과 유사한 과목을 부전공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부전공 자격을 딴 뒤에도 직무연수 기회를 우선적으로 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