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마스크/가면은 '숨김'일까 '드러냄'일까?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8시 34분


■ 마스크 존 맥 외 지음, 윤길순 옮김 232쪽 1만5000원 개마고원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고 나서 자신의 머리가 없어질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어떻게 하면 이를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들은 마스크, 즉 가면을 고안해냈다. 그리곤 가면을 만들어 무덤 속 미라 위에 함께 매장했다. 사라질 머리를 대신하려는 의도였다. 그 유명한 투탄카멘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집트인들에게 가면은 얼굴을 바꾸거나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신(神)과 같은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죽음 이후, 언젠가 찾아올 불가항력적인 위기의 순간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이 필요했고 그 매개물이 바로 가면이었다. 사라진 육체를 대신해 영혼이 부활하면 가면이 그 영혼에 새로운 육체를 제공해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 이집트의 가면은 종교적 상징물이었다.

이와 달리 고대 그리스 로마의 가면은, 가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면 그 자체였다. 연극을 관람하는 그리스인들에게 가면은 그저 배우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가면은 이처럼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역할과 의미가 변해왔다.

이 책은 유럽 아프리카 멕시코 일본 등 세계 곳곳의 가면의 전통, 가면놀이의 종류와 특징, 그 사회문화적 의미 등을 다뤘다. 8인의 저자는 예술사 고대사를 전공한 영국 브리티시박물관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의 전현직 큐레이터들. 가면과 가면의식은 시공을 초월하는 인류 보편적인 문화다. 계절이 바뀔 때나 성인식 할례식과 같은 통과의례, 다양한 종교 의식 등에 가면이 등장한다. 질병의 치료나 재판 과정에서도 가면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면의 사회문화적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 유럽의 가면놀이에서 그 단서를 발견한다. 유럽 곳곳의 사육제나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할리퀸 등 유럽에서의 가면놀이는 주로 계절이 변하는 시기(특히 새해)에 열린다.

저자들은 우선 계절의 이행기가 사람의 심리를 불안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계절의 이행기는 과거도 아니고 새로운 미래도 아닌 어정쩡한 시기다. 이런 시기엔 심리적 공백이 발생한다. 이는 자칫 사람들로 하여금 퇴행이나 설익은 변화에 빠져들게 만들어 삶을 불안하게 한다. 따라서 이 때 열리는 가면놀이는 개인의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 공동체적인 통합을 가져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바로 가면 행사의 사회문화적 의미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숨김과 드러냄’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가면, 그 양면성을 통해 종교적 삶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 가면을 통해 들여다 본 인류의 삶과 문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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