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영화와 소리 '사운드를 빼고 영화를 말하랴'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7분


영화에서 소리는 이미지의 들러리가 아니다. 히치콕 감독의 '다이얼 M을 돌려라'처럼 스토리의 핵심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소리는 이미지의 들러리가 아니다. 히치콕 감독의 '다이얼 M을 돌려라'처럼 스토리의 핵심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영화학의 논문들이 이미지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운드로 눈을 돌리는 순간 불현듯 이제까지의 영화연구가 귀머거리에 가까웠다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영화가 보이는 것에 우선권을 부여한 예술이며, 시각적인 매혹이 영화의 첫번째 인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두가지 핵심적인 개념인 몽타주와 미장센이 화면을 조합하는 것과 배열하는 것을 지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영화에서 대부분의 분석은 장면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1929년 첫번째 토키영화 ‘재즈 싱어’가 등장한 이후 사운드는 영화에서 이미지에 그저 덧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말 중의 하나는 “토키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영화는 침묵을 발견하였다”라는 아이러니이다.

사운드는 이미지와 어울리거나 대립하면서 서로 함께 영화의 감각과 정서를 창조하는 것이지, 단순히 거기에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세상이 보이지만, 그것이 들리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미셸 시옹은 방치 상태에 놓여진 영화에서의 사운드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첫번째 세대일 것이다. 에이젠쉬테인을 비롯해 한스 아이슬러와 함께 아도르노, 벨라 발라쥬, 마르셀 마르탱이 부분적으로 연구한 미셀 시옹은 이것을 체계적으로 다시 정리하고 더 나아가 반대의 방식으로 사운드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이제까지는 영화에서 이미지를 중심에 놓고 그 이외의 다른 영화적 요소들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던 것에 대해, 미셀 시옹은 사운드를 중심에 놓고 연출을 생각할 경우 이미지는 때로 부차적이거나 기의에 대한 기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질문을 제기한다(자크 타티와 로베르 브레송, 알프레드 히치콕, 막스 오필스, 프리츠 랑의 영화들).

그래서 이미지에 시점(point of view) 쇼트가 있다면 사운드에는 청점(聽點, point d’ecoute)이 있다고 제안한다. 이것이 미셸 시옹의 사운드에 관한 연구 3부작에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그는 ‘영화에서의 목소리’(82), ‘영화와 소리’(85, 본서), ‘영화에서의 말; 구멍뚫린 막’(88)으로 이어지는 세 권의 사운드 연구서에서 제목 그대로 들려오는 목소리와 사운드, 그리고 대화하는 말을 분석한다.

그것은 동시에 사운드를 중심에 놓고 미장센에 관한 이론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셸 시옹의 연구는 완전히 새롭다기 보다는 앙드레 바쟁의 전통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셸 시옹은 베르사이유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20여곡의 전자음향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파리3대학과 FEMIS에서 사운드를 강의하고 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정작 영화음악은 만들지 않고 있다.

(1)‘Bande―son’을 ‘음향 테이프’라고 번역했는데(5장)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이 쉽게 다가올 것 같다. (2)바그너의 악극 ‘발퀴레’의 3막 1장 중 ‘발퀴레의 기행(騎行)’을 ‘월키리가족의 기마 여행’이라고 번역한 대목은(76쪽, 180쪽) 웃고 지나치기에는 과한 것 같다.

▼'영화와 소리' / 미셸 시옹/ 지명혁 옮김/ 민음사/ 271쪽 1만2000원▼

정성일(영화평론가·월간 ‘키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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