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효과' 세계증시는 그의입을 통해 바라본다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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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을 바라본다. 현재와 미래의 경제를 묘사하는데 이번에는 그가 과연 어떤 단어를 선택할까. ‘과열’? ‘이상’? ‘안정’? 그의 말 한마디에 세계 증시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앨런 그린스펀(74). 미국의 통화금융정책, 공개시장정책 수립 집행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Federal Reserve Board, 이하 연준) 의장으로 13년째 군림하고 있는 거인.

미국에서 1999년 9월 발간돼 이미 국내 경제계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도 원서로 탐독한 독자가 적지 않은 이 책(원제 The Greenspan Effect)은 지난 13년간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어떻게 격렬하게 반응해 왔는지, 지극히 절제되고 모호한 그린스펀의 발언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탐문한 책이다. 베테랑 컨설턴트인 두 저자가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87년부터 99년까지 평균 3주 간격으로 토해냈던 3500쪽 분량의 강연록.

연준이 출범한 것은 1913년. 그런데 왜 유독 그린스펀에 이르러 연준의 영향력이 이토록 거대해진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이 세계 주식시장을 24시간 연결하고 일국의 경제정책 영향력이 국경을 넘어서는 ‘글로벌 마켓화’가 그 배경이다. 최근 1,2년 사이 그린스펀의 발언이 한국 신문의 1면을 차지하는 이유도 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증권투자자들 때문이다. 따라서 책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것도 한편의 소설같은 ‘그린스펀 효과’의 사례들이나 ‘그린스펀 발언의 16가지 포인트’같은 실전지침이다.

찰력있는 경제평론가들은 그린스펀에 대해 “금리를 올리는 대신 연설을 한다”고 평한다. 1996년 12월5일 어느 저녁 만찬에서 그린스펀이 ‘이상’‘과열’‘거품’이라는 단 세가지 단어를 구사함으로써 미국 호주 일본 홍콩 영국 독일의 주가지수가 연쇄적으로 폭락했던 사건 등, 그린스펀은 ‘공개발언’이라는 경보장치를 사용해 막대한 정책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증시의 하락 상승 보합을 좌지우지 한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개별 사례보다 더 의미있는 정보는 미국 경제 메커니즘이나 연준의 시장개입 방법, 그린스펀의 경제철학 등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린스펀 발언의 암호를 해독하게 하고 세계경제의 동향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코드이기 때문이다.

국은 80년대 이래 주택담보대출에서 학자금 융자까지 모든 종류의 부채가 금융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도록 패키지화하고 증권화했다. 이렇게 자금시장간의 통합정도가 높기 때문에 ‘그린스펀이 언급하는 사안은 항상 궁극적으로 (그 핵심고리인) 금리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연준의 지상목표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을 오로지 실리콘밸리의 기술혁명 덕분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 기록적 성장이 그린스펀이 이끄는 연준의 강력한 ‘과열방지’ 노력, 즉 ‘주식시장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거품을 없애는’ 건실한 목표점 덕분에 순항할 수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경제학책이지만 몇 개 그래프를 빼고는 수식 하나 등장하지 않아 지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해볼만하다.

번역자는 정순원 현대자동차 부사장. 359쪽. 1만30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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