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전 결승3국]'鐵女'루이, 조훈현 꺾고 女국수 등극

  • 입력 2000년 2월 21일 23시 31분


세계 바둑사가 다시 쓰여졌다.

'반상의 철녀(鐵女)' 로 불리는 한국기원 소속의 중국 여성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이 세계 최초로 일반 기전에서 타이틀을 획득했다.

▼세계최초 일반기전 우승▼

루이 9단은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4층 인촌라운지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 43기 국수전 도전 3번기 최종 3국에서 흑으로 199수만에 바둑황제 로 국수타이틀을 쥐고 있던 조훈현(曺薰鉉)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둬 종합전적 2승1패로 국수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루이 9단은 지난해 여류국수에 이어 최초의 통합 국수위에 오르는 한편 일반기전에서 정상에 오른 첫 여성기사로 바둑사에 남게 됐다. 18일 제1회 흥창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 조혜연 2단을 꺾고 우승한 뒤 국수전을 차지해 3일만에 2개 대회를 석권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모르겠다. 상당히 운이 좋은 바둑이었다. 국수전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

▼"정말 많이 배웠다" 상기▼

엄청난 '사건'을 만든 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일까. 루이 9단은 평소 철녀 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상기된 표정으로 그로서는 '긴 소감'을 밝혔다.

1승1패로 '외나무 다리'에서 대권이 향방을 가늠해야 했던 두 사람. 대국 초반은 지난달 31일의 2국과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됐다. 백을 쥔 조 9단이 발빠른 행마로 실리에서 앞서 나간 반면 루이 9단은 좌변과 중앙에서 두터운 세력을 구축하며 맞섰다. 하지만 루이 9단은 중반 중앙에서 흑백 대마가 얽히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뒤 끊임없이 밀어붙여 '거인'의 무릎을 꿇렸다.

조9단은 1976년 국수전 타이틀을 처음 거머쥔 뒤 10연패를 이뤄냈으며 통산 15회 우승이란 국수전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 9단은 루이 9단의 기세에 밀려 이날 국수전 2연패에 실패했다.

▼바둑계 페미니즘시대 예고▼

윤기현 9단은 "루이 9단이 국수전에서 우승한 것은 남성 위주의 세계 바둑이 새 밀레니엄을 맞아 여성과 공존 또는 경쟁하는 새로운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정동식사무총장(프로 5단)도 "조훈현 9단이 1989년 잉창치배에서 우승하고 이창호 9단의 출현을 계기로 국내에 바둑열풍이 불었다"면서 "루이의 우승을 계기로 한국은 물론 세계 바둑계에 '페미니즘'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이9단은 "국수라는 명칭이 한국 바둑계에서 최고 고수의 명예를 상징하는 말임을 알고 있다"면서 "한국에 정착한뒤 좋은 바둑을 두게 되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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