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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0월 25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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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잡다한 월동 준비를 하는 참인데 교무과에서 데리러 왔다. 과장이 부른다는 것이다. 교무과는 기름 난로의 온기로 훈훈했다. 교수님 계장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따뜻한 차를 권하고 나서 말을 꺼냈다.
오 형이 이번에 사회참관에 선정되었소. 나가 강력하게 추천을 했지라.
고맙군요.
헌디 조껀이 있어요. 나가기 전에 우리헌티 서약서 한 장 써야 쓸것이고 잉, 돌아오면 소감문을 써야 합니다.
나는 곧 귀찮은 생각에다 무력해지는 기분이어서 맥없이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럼 그만두지요 뭐.
어허, 그만두다니. 모처럼의 기횐디 암튼 나가셔야지. 그래서 서약서는 내가 다 작성해 놓았구먼요. 밑이다가 이름만 쓰고 지장 찍으면 되지라.
그가 서약서라고 타자해 놓은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앞으로 소내 재소자 수칙을 준수할 것이며 참관 도중에 계도의 제반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과 범칙 시에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식이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볼펜을 받아 수인번호와 낯설게 보이는 내 이름을 적어 넣었고 엄지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이름 끝에 찍었다. 뭔가 일을 저지르는 느낌이어서 엄지에 불그레하게 남아 있는 인주 자욱을 휴지로 지우고도 자꾸만 옷자락에다 문질렀다. 계장이 나에게 턱짓을 하면서 따라 들어오라고 말했다. 과장은 오십대의 살이 찐 사내였는데 눈두덩이 졸린 것처럼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인상이었다. 그는 목소리도 작고 졸린 듯했지만 두꺼운 눈꺼풀 아래에서 나를 노려 보는 가느다란 눈매는 제법 날카로워 보였다. 계장이 말했다.
이번에 참관 나가는 사람입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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