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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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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사 년 초여름이었을 거예요. 나는 정희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으로 찾아 갔어요. 그 무렵에 어찌된 일인지 우리 자매는 시간이 서로 엇갈려서 집에 들를 때에도 서로 전화는 가끔 하면서도 약속을 했다가는 서로 바쁜 일이 생겨나서 몇 달 동안을 못만나고 있었거든요.
내가 병원 구내의 복도 밖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려니까 가운 차림의 정희가 피곤한 얼굴로 나타났어요.
언니 오래 기다렸어?
응 조금. 바쁘면 그냥 가구.
아냐, 오늘 어차피 당직이야. 미리 말해 뒀어. 같이 저녁 먹자.
다행이구나.
잠깐만 기다려. 옷 갈아입고 나올 거니까.
정희와 나는 대학 구내를 천천히 걸어 나왔어요. 막 신록이 짙어지고 있었고 바람도 싱그러웠지요.
사실은… 언니에겐 좀 미안한데 말야. 내가 겹치기 출연을 하게 되어서 그래.
무슨 얘기?
언니 전화 오기 며칠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어. 누가 자리를 함께 해두 괜찮겠지?
머 괜찮겠지. 근데 누구야?
내 환자. 형 친구래.
나는 정희가 형이라고 부르는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 즈음에 군의관으로 나간 선배를 말하는 것이었고 두 사람은 나중에 부부가 되었지만요. 어쨌든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요. 정희는 그에 관해서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대학의 담을 빙 돌아서 호젓한 곳으로 갔는데 무슨 경양식 집이었을 거예요. 아마도 정희는 맥주라도 먹고 싶었겠지. 그 무렵에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정희는 다른 수련의들과 학교 근처에서 소주를 왕성하게 마셔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우리가 계단을 올라가 격자 유리가 달린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창가의 구석 자리에서 한 사내가 엉거주춤 하면서 일어나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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