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46)

  • 입력 1999년 2월 22일 19시 26분


아버지가 우리에게 물려줄 건 빨갱이 자식들이라는 이름밖에 뭐가 있어요?

그랬더니 그이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천천히 조용하게 내게로 다가서더니 내 뺨을 한 대 철썩 하고 때렸어요. 그리고는 얼굴을 하늘로 쳐드는데 아버지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데요. 돌아서서 마루로 올라가는 아버지의 어깨가 간간이 떨고 있었죠.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아무 소리도 없이 가만히 문을 닫고 잠이 들었는지 불도 켜지 않았어요. 나는 소리를 죽여 울었는데 뺨을 맞은 아픔이나 수치심보다는 아버지께 뭔가 단단히 잘못을 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어요.

이튿날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기전에 방문 앞에 가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어머니는 대개 그 시간쯤에는 피곤에 지쳐 아직도 깊은 잠에 떨어져 있을 무렵이에요. 미닫이가 슬그머니 열리더군요.

윤희야, 가까이 오너라.

열린 문 사이로 아버지의 길고 마른 얼굴이 보였어요. 아버지는 억지로 웃는 듯이 이미 그 때 검은 자취가 생겨난 눈 주위에 잔주름을 짓고 나를 보대요. 아버지는 얇은 책 한 권을 내밀었지요.

어제 광화문에 나갔다가… 너 줄라구 샀다.

아버지는 외서 서점에 가끔 들러서 책 구경을 하곤 했는데, 가끔씩 잡지나 문고를 사들고 들어오곤 했어요. 그이가 내게 내민 것은 일어 문고판 화집이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가장 아끼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요. 고야의 에칭 판화집이었지요. 그 파격적이고 무시무시한 재난과 고통으로 가득찬 세계. 압도적인 대가의 손길이 느껴지지요. 나는 책을 건네받으며 어젯밤이 더욱 부끄러워졌어요.

아버지 어제는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 어서 학교 가거라.

나는 며칠 뒤에야 어머니에게서 그날 아버지의 전례없던 만취가 무엇때문이었는지 알았답니다. 유신 이후 사회안전법이라는 것이 생겨서 반공법에 저촉되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심사 결과 재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보증인을 내세워야 했어요. 그나마라도 다행이었지만. 아버지는 평생을 그 옛날의 상흔으로 수치스러워 했죠. 나중에 내가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진작에 전향했어요. 처가 덕으로 살아남았죠. 산에서 잡혀 남원 수용소에 있을 적에 큰외삼촌이 분류 등급을 훨씬 양호하게 받도록 조처를 했다지요. 아버지는 그 덕으로 즉결처분 당하지 않고 감옥에서 다섯 해만 살고 나왔지요. 큰외삼촌은 변호사를 하시다 돌아가셨지만 왜정 때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고 해방 뒤에는 사상검사를 지냈어요. 아버지는 그 높고 막강한 처남을 만나기조차 싫어했답니다. 어머니는 툭 하면 맏오라비 집으로 가서 눈물바람을 했어요. 나도 어렸을적에 큰외삼촌 집에 어머니를 따라간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서재에서 연신 고함을 지르는 오라비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야단을 맞는 동안 나는 외숙모가 내준 나마까시나 요오깡을 얻어 먹고는 했지요.

아아, 그 날도 아버지는 시장에 나가 어머니를 만나고 두 분이 함께 큰외삼촌의 변호사 사무실에 나가 구명을 호소했겠지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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