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음악계 결산]젊은관객 늘어…움츠린 가슴 활짝

  • 입력 1998년 12월 29일 19시 30분


추운 한겨울 밤일수록 별들은 더욱 빛난다. 경제한파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어낸 98년 음악계도 수많은 별들이 환한 빛을 발했다.

음악가의 독주회 중에는 지난 3월 대전과 서울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라벨 피아노곡 전곡연주회가 단연 돋보였다.

일생의 한 시대를 다 바친 ‘천착’의 결과인 그의 라벨 해석은 연주자의 개성과 학구적 정신, 전석매진을 기록한 매표율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 사례로 기록됐다. 백건우는 프랑스와 러시아로 이어지는 순회연주를 통해 해외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한국 오페라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예술의 전당의 ‘오페라 페스티벌’은 오디션을 통한 주연급 발굴, 국내 최초로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린 ‘레퍼토리 시스템’의 실현, 화요일 할인공연을 중심으로 한 전석매진 사례 등 여러가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결실은 젊은 신예의 발굴. 막간(幕間)전환의 과감한 실험과 시적 정취가 돋보이는 무대 등으로 성공을 거둔 ‘라보엠’의 젊은 연출가 이소영,‘카르멘’의 돈호세 역으로 출연해 힘과 열정, 소심함까지 완숙하게 표현해낸 테너 김재형의 출현은 올 ‘오페라 페스티벌’이 이루어낸 가장 큰 소득으로 꼽혔다.

해외 연주자 내한공연은 반주자가 없어 상대적으로 개런티가 적게 드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등 거장급 연주자와 발렌티나 리시차 등 화제의 신진 피아니스트들이 1년 내내 무대를 장식하며 예년을 웃도는 피아노 열기를 기록했다. 재미교포 피아니스트 미아 정은 가뜩이나 깎아 받은 연주료 중 절반을 반납, 공연계의 훈훈한 미담을 장식하기도 했다.

한편 피아노 열기에 비해 세계적 성악가의 내한공연은 바바라 보니(9월), 오케스트라 공연은 미하일 플레트뇨프 지휘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내한공연(11월)등 각각 한번으로 그쳐 장르별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한국인 신예 연주가도 속속 선을 보였다. 첼리스트 다니엘 리는 데뷔음반 발매와 함께 미국 뉴욕 링컨센터의 앨리스 털리 홀 데뷔공연, 한국 데뷔공연까지 이루어내 풍성한 화제를 낳았다.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2년간 협연계약을 맺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진도 이목을 끄는 기대주로 ‘깜짝 등장’했다.

국악계는 연초 국립창극단이 완판 장막창극 ‘춘향전’ 판소리 전바탕을 여섯시간의 무대에 올리면서 창극 붐을 재연,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다.국립창극단이 선보인 ‘백범 김구’, 국립국악원의 경서도 소리극 ‘남촌별곡’등 창작창극도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에 비해 완성도 높은 무대와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창극계 최대 스타는 국립창극단의 무대마다 주역을 맡은 소리꾼 왕기석. “판소리계 저변이 취약하다 보니 혼자 무대를 떠맡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 정도로 그의 역할은 굵직굵직했다.

98년 공연예술계는 △청중 감소 △기업 협찬금 감소 △환율상승에 따른 해외연주자 연주료 인상이라는 ‘3각파도’의 타격으로 휘청이는 가운데 힘든 한해를 보냈다.

이런 상황이 공연예술계 전반의 ‘침몰’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일부 공연기획사의 과감한 기획 투자뿐 아니라 청년관객의 증가라는 사회적 변수가 제역할을 했기 때문. 대학서클과 PC통신, 예능전공자 등을 기반으로 한 청년층 공연관람층의 열기는 내한연주가마다 한마디씩 언급할 정도의 ‘이색 현상’으로 공연예술계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