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분쟁 무엇이 문제?]『宗務위주 벗어나야』

  • 입력 1998년 11월 15일 20시 08분


“이 지긋지긋한 스님들 싸움을 종식시킬 대안은 도대체 없는 겁니까?” 12일 낮 조계사 대웅전에서 승려들의 몸싸움을 바라보던 김모씨(43)는 한숨을 쉬다 말고 취재기자들에게 “언론도 싸움 중계만 하지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해달라”고 따지듯 요구했다. 그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불교 분규의 뿌리는 너무도 깊고 복잡해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난마처럼 얽키게 됐을까. 먼저 현재 조계종의 독특한 사찰 소유구조를 빚어낸 근현대 불교사를 짚어보자.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공포해 전국의 사찰을 31개 본사와 이에 딸린 말사(末寺)체제로 바꾸어 주지를 총독부가 임명하고 사찰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찰 소유구조는 뒤죽박죽이 돼버렸고 조선시대만 해도 수행하는 승려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책이었던 주지의 전횡이 본격화됐다. 이 본사체제가 남북 분단후 현재의 24개 교구본사 제도로 이어져오고 있다.

여기에다 이승만대통령이 54년 ‘대처승은 사찰 밖으로 나가 살고 비구승들이 사찰을 지키라’는 내용의 유시를 내려 당시 숫자로는 대처승의 10분의 1밖에 안됐던 비구승들이 전국의 사찰을 하나씩 접수했다. 특히 유시중에 ‘비구승의 수가 부족하면 속인(俗人)이나 신도가 절을 지켜도 좋다’는 내용도 있어 그야말로 자격미달자들이 갑자기 승려가 돼 사찰을 맡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정화’(법난)로 불리는 이 사태는 일제가 왜곡시킨 우리 불교전통을 되살리는 의미가 컸지만 숱한 승려 싸움의 씨앗이 된 것도 사실이다. 총무원의 권한이 계속 강화된 것도 정화초기 강력한 집행기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와 더불어 문중체제도 분쟁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조계종은 중앙에서의 권한이 큰 반면 각 지방에는 힘센 문중들이 자리잡고 있다. 각 문중에서 형성된 세력들은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한 문중내에서도 갈래가 생겨난다.

이번 조계사 사태에서 정면대립하고 있는 송월주총무원장과 월탄정화개혁회의상임위원장은 ‘금오(金烏)문중’에서 동문수학한 사형사제(師兄師弟)지간.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교수는 “문중은 자연집단적 형태를 띠고 있어 승려들이 집단행동에 가담하기 쉽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여러 요인이 겹쳐져 조계종 내부에선 종정 중심제와 총무원장 중심제를 둘러싼 갈등, 사찰 재산 처분을 둘러싼 다툼 등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78년엔 월하스님(현 종정)을 총무원장으로 하는 별도의 총무원이 개운사에 세워져 종단이 양분되기도 했다.

이렇듯 분규의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사찰 소유구조 등 불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불교국가인 미얀마처럼 승려들의 수행공간과 신도들의 종교공간을 철저히 분리해 사찰운영 재정관리 포교 사회봉사 등은 신도들이 담당하고 승려들은 수행에만 전념토록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국은 그럴 여건이 안된다. 주요 사찰들이 산속에 있어 사판승(事判僧·종무를 담당하는 승려)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 사판승의 정점이 총무원장이다.

이와 관련 한 불교학자는 “수행엔 관심없고 사판승 자리에만 집착하는 극소수 승려들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선 사판승을 일정 기간 이상 계속 할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즉 주지 등 종무직을 일정기간 거치고 나면 그후엔 반드시 수행에 몇년이상 전념해야만 다시 종무직을 맡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

현재의 선거제도를 원로 중심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금강스님(백양사)은 “세속의 투표제도를 종교에 무리하게 적용시키다 보니 민주적인 것 같지만 부작용도 크다”며 “승려들의 투표로 본사 주지를 뽑는 현행 제도 대신 교구별 원로회의체를 구성해 원로스님들이 며칠이건 합숙하며 회의를 해 합의체 방식으로 본사 주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무원장 선출에도 이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상당수 스님들의 의견이다.

또 한 스님은 “종교는 수행과 포교 교육 기능이 중심이 되고 행정은 그야말로 간사(幹事)역할에 국한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반대”라며 “총무원장의 권한을 더욱 축소시켜 포교 교육원장 아래에 두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교수도 “해방이후 불교재산을 팔아 먹는 경우가 많아 인사 재정권의 총무원 집중이 필요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불교전통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총무원을 불교 권력기관이 아닌 대국민 불교 서비스 통로로 과감히 변화시켜야한다”고 당부했다. 12일 조계사 대웅전 입구에서 만난 박순주할머니(74). “다른 종교가 우리 불교보다 반드시 더 깨끗한 것은 아니여.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스님들은 한줌 밖에 안되거든. 고것들을 어떻게든 쫓가내야 할텐디….”

〈이기홍·전승훈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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