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1년]부부 경제갈등 상담 부쩍 늘었다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2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서울 여성의 전화’‘아버지의 전화’ 등 가정문제 상담기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작년 한달 평균 80여건에 그쳤던 가정법률상담소의 면접 상담건수가 올해는 월 1백60여건꼴.

가정법률상담소 대기실에서 만난 김모씨(43)는 국내 대기업 L사 차장으로 있다가 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해 7월에 명예퇴직했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사건건 부딪치게 됐습니다. 아내는 싸울 때마다 ‘두 아이는 어떡하냐’며 악을 쓰지만 난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그만두었겠습니까. 남편의 고통도 이해해줘야지요. 나는 그동안 ‘돈버는 기계’였다는 말입니까.”

IMF사태 이후 많은 가정에서 가장의 실직이나 소득 감소로 가족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체 상담건수 가운데 채무에서 벗어나기 위한 위장이혼 상속포기 상담이 20%에 이를 정도.

강정일(姜貞一) 상담원은 “최근 ‘부도가 났으니 집 한채라도 건지려면 이혼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덜컥 이혼을 해주고 눈물을 흘리는 아내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작년 한해동안 ‘서울 여성의 전화’가 접수한 가정경제문제 상담은 1백39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4분기(7∼9월)에만 3백10건으로 급증했다.

전업주부 이연숙(李娟淑·52)씨는 남편이 올초부터 생활비를 직접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살이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이 ‘흥청망청 쓸 돈이 없다. 이제부터 모든 생활비는 내가 관리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제까지 돈을 헤프게 쓴 적도 없지만 이 나이에 몇천원까지 일일이 타쓰자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여성의 전화’ 정송(鄭松)대표는 “IMF관리체제 이전의 상담 내용은 주로 부부의 성격차이나 처가 또는 시가와의 문제였다”면서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들어져 아내가 가출했다’거나 ‘잘못된 빚보증 때문에 쫓기고 있는데 아이가 보고 싶다’는 딱한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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